항목 ID | GC04210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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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樓亭 |
영어의미역 | Tower and Pavilion |
이칭/별칭 | 정루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고대/삼국 시대,고대/남북국 시대,고려/고려,조선/조선,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김강식 |
[정의]
부산광역시 일대에 지면보다 높게 지어 사방을 쉽게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든 누각이나 정자.
[개설]
누정(樓亭)은 전통 시대에 자연 경관과 어우러져 휴식과 학문을 행하던 공간이다. 멀리 넓게 볼 수 있도록 다락 구조로 높게 지어진 누각(樓閣), 경관이 수려하고 사방이 터진 곳에 지어진 정자(亭子)로 나누어진다. 누정은 누각과 정자를 함께 일컫는 명칭으로 정루(亭樓)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이름 뒤에 누(樓)·정(·亭)·각(閣)·당(堂)·암(庵)·정사(精舍)·대(臺)·원(院)·헌(軒)·재(齋)·와(窩) 등의 명칭이 붙는다. 이 가운데 누·대·정 등은 거닐며 경치를 보는 공간, 객사·각·원 등은 공공건물, 헌·당·재·와 등은 개인의 거처, 암·정사 등은 서원이나 사찰의 부속 건물에 사용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누정조」에서는 누정을 누·정·당·대·각·헌 등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누각은 누관(樓觀)이라고도 하며, 보통 높은 언덕이나 돌 혹은 흙으로 쌓아 올린 대 위에 세우기 때문에 대각(臺閣) 또는 누대(樓臺)라고도 한다. 정자는 누각에 비해 작은 건물인데, 벽이 없고 기둥과 지붕만으로 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놀거나 휴식할 장소로서 산수 좋은 높은 곳에 세우는데 정각(亭閣) 또는 정사(亭榭)라고도 한다.
누정은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마을 속의 살림집과 달리, 자연을 배경으로 한 남성 위주의 유람이나 휴식 공간으로 특별히 지은 건물이다. 원래 방이 없이 마루만 있고, 사방이 두루 보이도록 막힘이 없이 탁 트였으며, 아름다운 경관을 조망할 수 있도록 높은 곳에 건립한 것이 특색이다. 그러나 누정 중에는 한두 칸 정도의 방이 있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누정의 기능이 다양화되면서 강학소(講學所)나 재실(齋室)의 기능을 하였기 때문이다.
[자연환경과 위치]
누정의 위치는 산수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누정은 첫째, 경관이 좋은 산이나 대 또는 언덕 위에 위치하여 산을 등지고 앞을 조망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둘째, 냇가나 강가 또는 호수나 바다 등에 붙어 있다. 셋째, 궁실의 후원 등 원림(園林)에 많이 건립되어 있다. 넷째, 변방 또는 각지의 성터에도 많이 건립되었는데, 주로 병사(兵舍)로 쓰기 위하여 지었으며, 부산 지역의 누정도 대부분 이러한 위치에 건립되어 있다.
누정의 명칭은 부근의 자연과 관련된 명칭, 인물의 호칭과 관련된 명칭, 한문 구절이나 고사에서 유래된 경우로 나눌 수 있다. 누정의 편액은 첫째, 누정의 명칭을 3자횡서(三字橫書)로 새겨 누정 밖에 걸어 놓고 있다. 둘째, 누정기(樓亭記) 또는 이곳에서 지은 누정제영(樓亭題詠)을 현판한 것 등이다. 누정기는 비교적 긴 한문장(漢文章)이며, 누정제영도 5언 또는 7언의 한시이다. 이들은 모두 종서(縱書)로 새겨 누정 안에 걸어 놓고 있다. 누정이 다른 건물과 구별되는 점은 이 때문이다. 누정명의 편액은 임금의 하사나 유명 인사가 명명한 것이 유명하다. 부산 지역의 누정에도 대부분 편액이 걸려 있다.
[기능과 구조]
누정의 기능은 세워진 위치나 이를 건립한 취지에 따라 다양하다. 첫째, 누정은 유흥상경(遊興賞景)[유람하며 경치를 감상함]의 기능을 가졌다. 둘째, 누정은 시단(詩壇)을 이루는 기능을 하였다. 셋째, 누정은 학문으로 수양하고 강학(講學)하며 인륜의 도를 가르치던 구실을 하였다. 넷째, 누정에서는 씨족끼리의 종회(宗會)나 마을 사람들의 동회(洞會) 또는 각종 계의 모임을 가지기도 하였다. 다섯째, 누정 중에는 사장(射場)[활쏘기의 수련장]의 구실을 하던 곳이 많다. 여섯째, 누정은 한 고을의 문루(門樓) 또는 그곳의 치적을 표상하는 것으로도 건립되었다. 이 밖에 별장(別莊), 전쟁 때의 지휘 본부, 재실(齋室), 치농(治農), 측후(測候) 등 여러 가지가 있었다. 부산 지역의 누정도 이런 기능을 가지고 있다.
누정은 모양이나 쓰임이 다양하여 여러 형태로 건립되었다. 구조는 단칸의 정방형으로부터 장방형, 육각형, 팔각형, 십자형, 부채꼴 등으로 다양하였다. 건물의 장식은 대부분 단청(丹靑)을 하였다. 그러나 향리(鄕里)의 누정은 백골로 두거나 긋기 정도를 하는 것으로 그치고, 기둥에는 주련을 붙이고 편액에 누정의 명칭을 써서 걸어 놓고 있다.
[현황]
1530년(중종 25년)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소개된 부산 지역의 누정은 동래현의 정원루(靖遠樓)와 기장현의 척서루(滌暑樓) 등이 있다. 1871년 간행된 『읍지』를 보면 동래부에 정원루(靖遠樓), 식파루, 망미루(望美樓), 장대, 연무정, 우빈정, 읍승정, 영파당, 결승당, 척기정, 진남정, 해운대, 적취정, 겸효대, 초하정, 정과정(鄭瓜亭), 태종대, 몰운대, 영가대(永嘉臺), 학소대, 동대, 삼성대, 오륜대, 의상대, 팔경대가, 기장현에는 원앙대, 시랑대, 삼성대, 적선대, 직금루, 척서루, 청사루, 공진루, 망풍정, 관덕정, 읍파정, 태정대가 각각 소개되어 있다. 1940년 간행된 『교남지(嶠南誌)』를 보면, 부산부에 성신당, 영가대 등이, 동래군에는 몰운대, 겸효대, 동대, 삼성대, 오륜대, 의상대, 팔경대, 십휴정, 해운대, 태종대, 정원루, 적취루, 소하정, 과정, 식파루, 망미루, 장대, 연무정, 우빈정, 읍승정, 문산정, 금수정, 반연정사가, 기장군에는 원앙대, 삼성대, 용두대, 적선대, 대정대, 척서루, 식파루, 공진루, 육일정이 소개되어 있다.
결국, 많은 누정이 사라졌지만 역사 문헌이나 문학 작품을 통해 부산 지역에 존재했던 누정을 짐작할 수 있다. 2012년 현재에는 1920년대 일제에 의해 이전된 동래부 동헌의 대문이었던 망미루[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4호]와 기장 향교(機張鄕校) 내의 풍화루(風化樓)[부산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63호]만 남아 있고, 영가대[2003년 복원]와 정과정[2008년 복원] 등이 복원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누정을 통해서 부산 지역의 전통 사회의 변화상, 상층 문화의 사회 구조, 지역 문화의 바탕과 특색 등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 문화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선비 문화나 산수(山水) 문화를 알 수 있다. 누정은 산수 좋은 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전근대 사회에 교양인들이 지적 활동을 폈던 곳이다. 아름다운 남동해안에 접해 있는 부산 지역에는 많은 누정이 건립되었다. 지금까지 잘 보존되어 있는 곳도 있지만, 현재 없어지고 터만 남아 있는 곳이 많아 복원이 시급한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