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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해필희」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0010
한자 山海筆戲
영어의미역 Record of Mountains and Waters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부산광역시 기장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양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잡문
작가 심노숭
저자 생년 시기/일시 1762년연표보기 - 심노숭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837년연표보기 - 심노숭 사망
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1801~1807년 - 심노숭 기장현 유배 시기
배경 지역 기장현 - 부산광역시 기장군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심노숭이 기장현에서 유배 생활을 할 때 남긴 잡문.

[구성]

「산해필희(山海筆戱)」는 조선 후기의 문신 심노숭(沈魯崇)[1762~1837]이 유배지 에서 부산 기장의 풍물·정취 및 자신의 감회를 간략하게 기록한 잡문(雜文)이다. 「산해필희」는 “평생 바둑, 장기, 잡희(雜戱)[여러 가지 놀이] 등을 알지 못하더니 궁하게 지냄에 할 일도 없고 근심으로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두려워 몸을 움츠리기도 하여 이러한 것을 잊기 위해 한결같이 붓에다 부치니, 이 또한 희(戱)일 뿐이다. 산과 바다 사이에 거처가 있어 기록한 것을 산해필희라 이름 지었다.”라는 서문과 함께 문예적 정취가 강한 글을 골라 따로 엮은 것이다. 주로 자신이 보고 들은 바, 혹은 읽은 서적에 대한 이야기를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다.

[내용]

「산해필희」 가운데 부산 기장의 정취가 잘 드러나는 이야기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신유년[1801] 다섯 번째 일기는 기장 바둑돌에 관한 이야기이다. 서울에서는 기장 바둑돌이 유명하다. 요사이 관아 아이들이 나[심노숭]를 찾아오는데, 바둑돌을 가느라 모두 손톱이 닳아 문드러져 있다. 검정 바둑돌은 읍의 십리 포구에서 나오고, 흰 바둑돌은 동래 수영 포구에서 나오는데 보통 관아 아이들이 이 일을 맡는다. 흑백 각 200알이 한 벌이 되는데 한 해에 바치는 것이 1,000벌 이상이라 관아 아이들 20명이 바둑돌을 갈지 않는 날이 없다. 관아 아이들이 바둑돌 수십 개를 가지고 마치 순백의 옥처럼 다듬는데, 그 본(本)과 비교하여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쓰지 않는다. 이것이 어디서 나온 분부인지는 모르겠으나 관의 받들어 행함이 이토록 근실한 것을 보면 분부한 이가 귀인임을 알 수 있다. 하나의 놀이 기구에 심지어 본까지 만들어 멀리 천리 하읍(千里下邑)에서 정발한다. 귀인이 이런 일에나 마음을 쓰고 있으니 백성과 나라를 위한 계획은 어느 겨를에 하리오! 사대부의 잘못된 한 생각의 폐해가 백성들에게 미치니 기장 관아 아이들의 손톱이 닳아 문드러짐에 그칠 뿐이 아닌 것이다. 이와 같이 심노숭은 「산해필희」를 통해 부산 기장의 풍물과 정취를 소개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감회와 견해를 밝히고 있다.

[특징]

심노숭은 38책으로 이루어진 시문집 『효전산고(孝田散稿)』와 20책으로 이루어진 유배 일기 『남천일록(南遷日錄)』을 지었다. 「산해필희」는 『남천일록』 중 문예적 정취가 강한 글을 가려 모은 것이다. 즉 일상적인 이야기 속에서 유배당했던 심노숭의 마음과 생활이 문학적으로 다듬어진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산해필희」에서 소개된 십리 포구는 현재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이천리 이동 마을의 작은 포구이다. 이동 마을 지역의 옛 이름은 바닷가의 돌이 바둑돌처럼 반지르르하다는 뜻에서 유래된 기포(碁浦)인데, 「산해필희」에 나와 있는 바둑알을 만드는 일과 관련 있어 보인다. 이처럼 「산해필희」는 200년 전 기장의 인정, 풍토, 생활 등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문학사뿐 아니라 지역사적으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고 하겠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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