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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9225
한자 佐洞-
영어의미역 Jwadong Village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좌동 좌동 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주영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자연 마을
변천 시기/일시 1914년 - 경상남도 동래군 남면 좌동리
변천 시기/일시 1942년 - 경상남도 동래군 남면 좌동리에서 부산부 수영출장소 좌동리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53년 - 부산부 수영출장소 좌동리에서 부산시 해운대출장소 좌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57년 - 부산시 해운대출장소 좌동에서 부산시 동래구 해운대출장소 좌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63년 - 부산시 동래구 해운대출장소 좌동에서 부산직할시 동래구 해운대출장소 좌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80년 - 부산직할시 동래구 해운대출장소 좌동에서 부산직할시 해운대구 좌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95년 - 부산직할시 해운대구 좌동에서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좌동으로 개편
자연 마을 좌동 마을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좌동 좌동 마을

[정의]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좌동에 있었던 자연 마을.

[명칭 유래]

좌동(佐洞) 마을장산에서 흘러내리는 춘천의 왼쪽에 있는 마을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본래는 ‘좌(左)’ 자를 썼으나 지금은 ‘도울 좌(佐)’로 변경되었는데, 그 연유는 알 수 없다.

[형성 및 변천]

좌동 마을이 있던 지역에서 구석기 시대 유적[긁개와 홈날, 몸돌, 대석 등이 출토]이 발굴되었으며, 79년(신라 탈해왕 23)에 토벌된 장산국(萇山國)이 있었다고도 전해져 오래 거주 역사를 알 수 있다. 좌동 마을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직후 김학봉(金鶴鳳)이 들어와 살며 김해 김씨(金海金氏) 동족촌을 이룬 것으로 전해진다. 『동래부지(東萊府誌)』[1740]에서 좌동 지명을 확인할 수 있으며, 조선 시대에는 해운대에서 송정·기장 방면으로 왕래하는 길목에 위치해 역참과 주막이 있는 교통의 요지였다.

조선 후기 동래군 동하면(東下面) 좌동리(佐洞里)에 속하였고, 1914년 남면 좌동리가 되었다. 1942년 부산부 수영출장소 관할로 개편되었다가 1953년 해운대출장소 관할이 되었다. 1957년 1월 구제 실시로 동래구 해운대출장소 관할이 되었으며, 1980년 4월에 해운대출장소가 해운대구로 승격하였다. 1995년 부산직할시가 부산광역시로 승격하면서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좌동 좌동 마을이 되었다. 2003년 신시가지 조성으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며 현재에 이른다.

[자연 환경]

좌동 마을은 북서쪽으로 구곡산이, 북동쪽으로는 부흥봉이 자리하며, 남쪽에는 농경지로 이용되던 넓은 평지인 장자벌이 있었다.

[현황]

좌동 마을해운대 신시가지로 조성된 지역으로 옛 마을이 있던 지역은 대부분 롯데 캐슬 아파트 부지에 포함되었고, 장자벌 역시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어 옛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옛 마을의 흔적으로 김해 김씨 삼현파 좌동 문중회 후손들이 건립한 재실인 덕송재(德松齋)[좌 1동 911번지]가 있고, 해운대 8개 마을[좌동 마을·대천 마을·오산 마을·미포 마을·온천 마을·장지 마을·운촌 마을·청사포 마을]에서 매년 돌아가며 제를 모셨던 상산마고당(上山麻姑堂)이 대천 공원에서 폭포사와 양운 폭포 를 지나 자리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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