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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네 마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8801
영어의미역 Andongnae Village
이칭/별칭 본동 마을,내동 마을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개금본동로17번길 13[개금동 371] 안동네 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표용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자연 마을
변천 시기/일시 1740년 - 동래군 동평면 와요리에 속함
변천 시기/일시 1910년 - 부산부에 편입
변천 시기/일시 1914년 - 동래군 서면 개금리에 편입
변천 시기/일시 1936년 4월 - 동래군 서면 개금리에서 부산부 부산진출장소 관할로 편입
변천 시기/일시 1957년 - 부산시 부산진구 관할로 편입
변천 시기/일시 1959년 - 가야동에 흡수
변천 시기/일시 1963년 - 가야동에서 개금동으로 분동
변천 시기/일시 1975년 - 개금동이 개금 1·2동으로 분동
변천 시기/일시 1976년 - 개금1동이 개금 1·3동으로 분동
상세 주소 안동네 마을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개금 3동 371 일대지도보기

[정의]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개금동에 있었던 자연 마을.

[명칭 유래]

개금동에서 가장 오래되고 안쪽에 자리 잡고 있다 하여 안동네[內洞] 마을이라 불렀다고 한다. 본동 마을이라고도 하였다.

[형성 및 변천]

안동네 마을의 형성 시기는 문헌상으로 확인이 불가능하지만, 당산이나 당산 나무를 통하여 약 500년 전으로 추정하고 있다. 마을에는 은진 송씨(恩津宋氏)가 주를 이루고 경주 최씨(慶州崔氏), 배씨, 유씨, 정씨 등이 살았다고 전하지만, 현재는 18~19대째 살고 있는 경주 최씨가 토박이로 살고 있다.

마을이 속한 지역은 『동래부지(東萊府誌)』[1740]에 동래군 동평면에 속한 와요리로 기록되어 있고, 『경상남도 동래군 가호안(慶尙南道東萊郡家戶案)』[1904]에는 동평면에 속한 개금동에 12호가 살며, 박씨·김씨·최씨 등의 성씨가 살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1910년 부산부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동래군 서면 개금리가 되었으며, 1936년 4월 부산부 부산진출장소에 편입되었다.

1957년 구제(區制)가 시행되면서 부산진구에 속하였다. 1959년 가야동에 흡수되었다가, 1963년 가야동에서 분동되었고, 1975년 인구 증가로 개금 1동·개금 2동으로 분동되었으며, 1976년 개금 1동에서 개금 3동이 분동되어 오늘날에 이른다. 이 지역은 6·25 전쟁 이후 수송 부대 등 군부대가 주둔하였다가, 1970년대 이전하며 군부대 터가 주택지와 아파트 단지로 조성되었다.

[자연 환경]

안동네 마을은 북쪽으로 백양산이 있고, 남쪽으로 엄광산이 바라보인다. 북쪽의 산지에서 발원한 개금천이 남동쪽으로 흘러 당감천에 합류한다. 현재는 개금천과 당감천은 복개되어 백양로가 만들어져 있다.

[현황]

안동네 마을개금초등학교에서 신개금 LG 1·2차 아파트, 개금 3동 주민센터 일대까지 걸쳐 있던 자연 마을이다. 지금은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며 옛 흔적을 찾을 수 없고 개금 3동 주민센터, 개금초등학교, 계림초등학교, 계림중학교 등이 있다. 마을 남쪽으로 백양로와 동서 고가로가 지나는 교통 요충지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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