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81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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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船倉- |
영어의미역 | Seanchang Village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부산광역시 강서구 성북동 선창 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전영섭 |
[정의]
부산광역시 강서구 성북동에 있는 자연 마을.
[명칭 유래]
지금은 선창(先艙) 마을이라 부르지만, 원래의 한자 지명은 배를 고치고 건조하는 곳이라 하여 선창(船倉)이라 하였다. 조선 시대 가덕진(加德鎭)에 병기고가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가야 시대 고분군인 성북 고분군이 발견되어 일찍부터 마을이 이루어졌으리라 추정된다. 조선 시대에 이곳에 가덕진과 천성 만호진(天城萬戶鎭)이 설치되었다. 1906년 웅천군(熊天郡) 천성면과 가덕면으로 나누어졌다가 1908년(순종 2) 웅천군 천가면으로 통합되었다. 천가라는 이름은 천성 만호진과 가덕진의 머리글자를 딴 합성 지명이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으로 천가면이 창원군에 편제되면서 눌차리·대항리·동선리·성북리·천성리 등으로 구성되었다. 1980년 의창군에 속하였다가 1989년 부산직할시에 편입되면서 강서구 성북동이 되었다. 1995년 부산직할시가 부산광역시로 승격하면서 부산광역시 강서구 성북동이 되었다.
[자연 환경]
선창 마을의 서쪽과 동쪽, 북쪽은 모두 바다와 인접한다. 마을 서쪽 갈마봉을 지나면 바로 바다이다. 남쪽은 구곡산과 불미골 소류지가 있다.
[현황]
선창 마을은 행정동인 가덕도동 3통 지역으로 가덕도 최북단에 자리 잡은 자연 마을이다. 가덕도동의 관문 구실을 하는데, 옛날에는 가덕도와 진해의 용원을 잇는 도선의 기점이다. 선창 서북쪽 갈마봉에는 임진왜란 때 왜장 구귀의륭(九鬼義蕯)이 중심이 되어 축조한 성북 왜성 터가 있다. 또 천가초등학교 내에 가덕도 척화비(加德島斥和碑)[부산광역시 기념물 제35호]가 있다. 1960년 10월경만 해도 경산 전씨(慶山全氏) 24여 가구가 동성 마을을 형성하여 살았다. 입향조는 19대조인 전녹흥(全錄興)이며, 매년 1월이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 동제를 지낸다. 지금은 여러 성씨가 모여 살고 있다.
2010년 부산과 거제 간 거가 대교가 준공되어 외지와의 접근성이 매우 용이해졌다. 마을 북쪽 바다에 부산 신항 남 컨테이너 터미널이 들어서 있다. 마을 주민의 생업은 어업이지만 부산 신항 개발로 어장의 기능이 사라지고 있다. 또한 이곳에는 가덕도 유자작목반이 운영하는, 이곳 특산물인 유자청을 생산하는 집하장 및 선별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