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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6928
한자 高等學校
영어의미역 High School
분야 문화·교육/교육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안경식

[정의]

부산광역시에 있는 중학교와 대학교 사이의 중등 보통 교육 기관.

[근대]

1. 개항기

부산 지역의 중등 교육의 역사는 1895년(고종 32)에 박기종(朴琪淙) 등에 의해 설립된 사립부산개성학교(私立釜山開成學校)로부터 시작된다. 사립부산개성학교는 1897년(고종 34)에 한국공립부산개성학교로, 1907년(순종 1)에 사립부산개성일어학교로 교명이 바뀌어 운영되어 오다가, 1909년(순종 3) 정부에 헌납하니 정부는 그해 4월 9일에 학부(學部)에서 제정한 실업 학교령에 따라 공립부산실업학교를 설립하였다. 이것이 한국 최초의 공립 실업 학교였으며, 부산 지방의 유일한 공립 중등학교였다.

설립 당시 동래 부윤 김창한이 교장을 겸무하여 개성학교의 교직원과 학생 대부분을 인수하고, 인계받은 개성학교 교사에서 그해 6월 4일 개교하니, 이것이 부산상업고등학교[현 개성고등학교]의 전신이다. 교사의 위치는 중구 영주동의 현 봉래초등학교로부터 남쪽 180m 거리의 언덕이었다.

부산 지역의 중등학교 역사에서 다음으로 언급할 학교는 부산진일신여학교이다. 부산진일신여학교의 출발은 호주장로여자선교연합회가 선교의 일환으로 1895년에 동구 좌천동에 세운 초등 교육 과정의 학교였는데, 1909년 8월 9일에 제정의 사립 학교령에 의하여 학부대신(學部大臣)의 허가를 인가받아 3년제 과정의 고등과를 병설하였다. 이것이 부산 지방에서 처음 설립된 여성 중등 교육 기관이었다. 그리고 동래기영회(東萊耆英會)에서 1907년에 삼락학교(三樂學校)개양학교(開揚學校)를 합쳐 설립한 동명학교(東明學校)도 사립 학교령에 의해 사립동래동명학교로 이름을 바꾸고, 1909년 8월 30일자로 학부대신의 인가를 얻어 정규 중등 교육 기관으로 출발하였다.

2. 일제 강점기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의 중등 교육 상황은 다음과 같다. 부산공립실업학교가 1911년에 부산공립상업학교로 바뀌었는데, 입학 자격은 보통학교 4년 졸업자로 하고 관립 고등 보통학교와 동등하게 인정되었다. 교육 과정에서는 일본어 수업이 많고 우리말과 한문 수업은 이전에 비해 크게 축소되었다. 3·1 운동 이후 부산공립실업학교는 부산제2공립상업학교[제1공립상업학교는 일본인 학교인 부산공립상업전수학교]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제2차 「조선 교육령」의 실업 학교령에 의하여 운영되었다.

지금의 동래고등학교 전신인 사립동명학교는 사립동래고등보통학교[1916년], 공립동래고등보통학교[1922년], 동래중학교[1938년]로 교명과 학제가 바뀌었는데, 일본인 교사가 점차 증가되어 학생들의 반발과 동맹 휴학을 불러오기도 하였다. 또 졸업생과 재학생이 교남친목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배일 및 민족정신 고취를 위한 계몽 강연에 나서기도 하였다.

1909년에 학부대신의 인가를 받아 고등과를 병설한 부산진일신여학교는 1913년 3월에 고등과 제1회 졸업식을 가졌다. 선교의 확충을 위해 독립된 여자 중학교의 설립을 계획, 추진하였으나 신설 학교는 일제의 개정 사립 학교 규칙의 적용을 받아야 하였으므로 설립 계획은 보류되었다. 이후 1925년에 동래로 이전하면서 동래일신여학교로 개교하였고, 부산진일신여학교는 초등부만 남게 되었다.

1927년 4월에는 부산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동구 수정동에서 1학급, 수업 연한 4년제 학교로 설립되었다. 1938년에는 동래공립농업전수학교가 개교하였고, 1945년 4월에 부산공립원예전수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또 1939년 3월에는 초량장학회 주도로 상업 실무 교육 기관인 사립초량상업실수학교가 설립되었으며, 1942년에는 한국인과 일본인 공학의 부산공립제2중학교가 신설되었다. 한편 호주선교회가 일제의 탄압으로 동래일신여학교의 경영을 포기하자, 동래 지방의 유지들이 오태환(吳泰煥)을 대표로 하여 구산학원을 설립하여 학교를 인수하고, 1940년 4월에 동래고등여학교로 개편하여 출발하였다.

[현대]

광복 당시 부산 지역의 중등학교는 14개 교에 4,186명의 학생이 있었다. 당시의 중등학교로는 동래공립중학교, 부산공립중학교, 부산제2공립중학교, 경남공립고등여학교, 부산공립고등여학교, 동래고등여학교, 경남제1공립상업학교, 부산제2공립상업학교, 부산공립공업학교, 부산제2공립공업학교, 부산공립원예전수학교, 흥아여자상업실무학교, 입정상업학교, 부산실천상업학교 등이 있었다. 1951년 9월 1일자로 6-3-3-4제로 학제가 변경됨에 따라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완전히 분리되었다. 1950년대부터 부산직할시 승격 전까지의 부산 지역 고등학교 현황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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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에 들어서면서 학교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다 1955년을 기점으로 증가세가 멈추었고, 사립 학교가 공립 학교보다 월등히 늘어났는데, 고등학교의 경우 10년간 5배 이상으로 팽창하였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고 부산이 임시 수도가 되면서 부산 지역에 서울을 비롯한 적 치하의 학교들이 피란 학교를 개설하였다는 것이다. 또 부산 지역의 학교들은 대부분 군이나 병원 시설을 학교 시설로 동원하였는데, 그 가운데 고등학교를 표로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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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과정의 측면에서 볼 때, 1954년부터 1963년까지는 교육 과정령이 공포되기 전의 이른바 ‘교과 과정 시기’에 해당한다. 1954년은 ‘교육 과정 시간 배당 기준령’이 공포되었으나 교과 과정이 아직 초안 단계에 있었고, 새 교과서는 나오지 않은 때여서 실질적으로 교육 과정의 공백기라 할 수 있다. 이때 부산시 교육위원회에서는 부산시 교육연구위원회로 하여금 『각과 학습 지도 지침』을 편찬하게 하고, 이것을 학교에 배부하여 교육 과정 운영의 정상화를 도모하였다.

1963년부터 부산은 직할시 체제로 접어들게 되었는데, 승격 당시의 교원 1인당 학생 수는 인문 고등학교는 31명, 실업 고등학교는 30명이었다. 그러던 것이 1986년에는 인문 고등학교가 32명, 실업 고등학교가 34명으로 조금 증가되었다. 1963년부터 1986년 사이의 고등학교 현황을 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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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부터 부산은 직할시 체제에 들었고, 생활 중심 교육 과정과 경험 중심 교육 과정을 표방한 제2차 교육 과정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초까지는 전국 중심의 국가 교육 과정 시기였기에 부산의 특수성을 지적하기는 힘들다. 다만 부산이 1970년대에 공업 중심 지역이 되면서 실업계 고등학교와 산업체 부설 학교 및 부설 학급 등이 1977년부터 설립되기 시작하였다.

1977년 3월에 구포여자상업고등학교와 부산진여자상업고등학교 등 2개 교에 여자 상업 고등학교 과정의 특별 학급이 설치되었다. 또 그해 12월에는 여자 상업 고등학교 과정의 부설 학교가 삼화에 설치되었으며, 1979년 2월에는 태창기업의 부설 여자 상업 고등학교가 설립되는 등 섬유, 신발 등 노동 집약 산업이 발달된 부산의 산업 구조에 따라 산업체 학교가 계속 증설되었다. 1987년에는 10개 특별 학급과 5개 부설 학교가 운영되었고, 부산직할시장을 비롯한 각계 인사로 구성된 후원회도 발족되었다.

1980년도에는 공업계 남학생을 위한 산업체 특별 학급이 경남공업고등학교에 설치되었으며, 1987년에는 대학 진학을 원하는 근로 청소년을 위하여 일반계 고등학교인 금정여자고등학교와 강서여자고등학교에 특별 학급이 설치되었다. 1987년부터 1989년 사이는 근로 청소년 교육이 가장 활발하였던 때로 10개 특별 학급과 5개 부설 학교가 운영되었다. 이후 산업 구조의 변화로 학교 수와 학급 수가 점차 줄어들다 2011년 현재는 시온실업고등학교 1개 교[3학급, 학생 수 42명, 교원 수 7명]만이 남게 되었다.

1986년부터의 학교 수, 학생 수, 교원 수의 변동 사항을 보면, 일반계 고등학교는 1986년에 53개 교, 1998년에 79개 교, 2011년에 100개 교로 지속적으로 증가하였으며, 실업계[전문계] 고등학교는 1986년에 37개 교에서 1998년에 47개 교, 2011년에는 42개 교로 소폭 증가하다 감소하였다. 학생 수는 1986년에 19만 3983명에서 21만 928명으로 증가하였고, 교원 수는 1986년에 5,813명에서 8,419명으로 증가하였다.

교육 과정의 특성화와 관련하여 예술 계열 학교 1개 교, 체육 계열 학교 1개 교, 과학 계열 학교 1개 교, 외국어 계열 학교 1개 교가 1986년부터 1998년 사이에 각각 신설되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2000년대의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 시책, 즉 과학·기술 교육이 적극 추진되었다. 1988년 제6 공화국이 들어서면서 교육 정책은 그동안의 양적 팽창에서 질적 향상으로의 전환을 추진하였으며, 미래 사회를 선도할 교육에 역점을 두었다.

교육 과정에서 있어서는 1987년부터 제5차 교육 과정이 시행되었는데, 제4차 교육 과정과의 차이는 지역화와 효율성에 있었다. 또 1998년도에는 중학교 성적에 의한 일반계 고등학교 입학 전형 제도가 실시되었다. 1990년대에 들어서서 제6차 교육 과정[1995년]이 마련되었고, 세계화·정보화 시대를 주도하는 신교육 체제 수립을 위한 교육 개혁안을 마련하였다. 그리하여 열린 교육, 수준별 수업 등이 현장 개혁의 중심 화제가 되었고, 과학·기술 교육도 지속적으로 강조되었다.

1995년에는 5·31 교육 개혁안을 내놓았는데, 열린 교육과 평생 학습 사회 건설을 비전으로 삼았다. 2000년대에 들어서서 제7차 교육 과정이 시행됨에 따라 고등학교 교육도 대폭 손질이 불가피하게 되었고, 고등학교 평준화에 따른 하향 평준화를 막기 위해 전문계 고등학교와 마이스터 고등학교, 자율형 고등학교 등 다양한 학교 제도가 마련되었다. 2012년 1월 현재 고등학교 현황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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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 고등학교 명단과 계열별 및 공립·사립 현황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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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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