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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민족미술인연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6914
한자 釜山民族美術人聯合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종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미술 운동 단체
설립자 송문익 등 17명
설립 시기/일시 1991년 2월연표보기 - 설립
해체 시기/일시 1993년 1월 9일~10일연표보기 - 민족민중미술운동전국연합의 해소 결의로 자동 해산
이전 시기/일시 1991년 6~7월 경 - 사무실 이전
최초 설립지 부산민족미술인연합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양정동 394-31 고려 빌딩 2층지도보기
주소 변경 이력 부산민족미술인연합 - 부산광역시 금정구 장전동

[정의]

1991년 서울에서 창립된 민족민중미술운동전국연합의 부산 지역 조직.

[설립 목적]

민족민중미술운동전국연합의 부산 지역 조직을 건설하여, 지역 단위의 민족 민중 미술 활동을 체계적으로 전개하기 위하여 설립하였다.

[변천]

1991년 부산미술운동연구소를 민족민중미술운동전국연합의 부산 지역 조직으로 개편하여, 부산민족미술인연합[약칭 부산민미련]을 설립하였다. 1991년 2월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부산미술운동연구소의 활동 내용과 회원 조직을 승계하였다. 회원은 부산미술운동연구소의 회원 송문익, 김상화, 곽영화, 오현숙, 김용재, 이정자, 권산 등과 준회원 부이비, 전기학, 이아영, 이정순, 최미란, 이태구, 이명귀가 가입하여 17명으로 불어났다.

하지만 창립된 지 얼마 되지 않은 1991년 3월 서울 지역 조직인 서울민족민중미술운동연합에 대한 탄압으로, 부산에서도 부산민족미술인연합의 사무실을 폐쇄하여 활동이 극히 위축되었다. 1992년 들어 조직을 추스르고, 5월 말 민주주의민족통일 부산연합 자주통일위원회에 가입하였다. 1993년 1월 9일~10일 민족민중미술운동전국연합이 스스로 조직 해체를 결의함으로써, 부산민족미술인연합도 자동으로 해산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부산민족미술인연합의 조직은 현장 지원 활동에 중심을 둔 민중연대위원회와 화랑 활동을 염두에 둔 창작위원회로 이분화 되어 운영되었으며, 비상근 형태로 운영하였다. 이 가운데 창작위원회의 활동은 점차 약화되었으며 결국 설 자리를 잃고 말았다.

주요 사업은 작품 전시 활동이었다. 1991년 2, 3월에 전국 단위 행사인 1991 삶의 현장 순회전 ‘하나되는 노동자 단결하는 노동자’를 부산에서도 개최하였다. 이후 ‘전국 청년 미술제’를 경성대학교 전시실에서 여는 등 여러 차례 구속 미술인 석방 투쟁을 전개하였다. 그해 4월 강경대 타살 사건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전국적인 ‘5월 투쟁’이 일어나자 부산민족미술인연합은 그 투쟁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1992년에 몇 차례의 걸개그림 작업을 하였고, 5월에 ‘일하는 사람들전’을 부산 가톨릭 센터 전시실에서 성대하게 개최하였고, 8월에는 ‘전국 청년 미술제’를 경성대학교 전시실에서 열었다. 또한 민주주의민족통일 부산연합 자주통일위원회 활동과 관련된 두 차례의 선전물 제작을 하였다. 그해 8월에 도시 빈민 김선호 열사에 대한 장례 지원 활동을 끝으로 현장 미술 활동을 실질적으로 마감하였다.

[의의와 평가]

부산 지역에서는 최초로 전국 단위의 민족 민중 미술 조직 체계의 수립에 참여하고, 그 지역 조직으로 활동하였다는 데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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