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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6869
한자 金應燁
영어음역 Gim Eungyeop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동부리 289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장선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본관 김해(金海)
대표경력 동래반제전위동맹 활동
출생 시기/일시 1911년연표보기 -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31년 7월 - 적기회 조직
활동 시기/일시 1931년 9월 - 적기회를 동래반제전위동맹으로 개칭해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32년 1월 - 반전 격문 사건으로 체포
활동 시기/일시 1932년 9월 - 동래반제전위동맹 사건으로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형 선고받음
출생지 김응엽 출생지 - 부산광역시 기장군 동부리 289지도보기
거주|이주지 김응엽 거주지 - 부산광역시 기장군 동부리 121-1
학교|수학지 동래고등보통학교 - 부산광역시 동래구 칠산동 360지도보기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기장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본관은 김해(金海). 아버지는 김두연(金枓演)이다. 기장 지역 출신 독립운동가 김두봉(金枓奉), 김약수(金若水)[본명 김두전], 김도엽(金度燁), 김시엽(金時燁) 등과 친척 사이다.

[활동 사항]

김응엽(金應燁)은 1911년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동부리에서 태어났다. 동래고등보통학교[현 동래고등학교] 학생으로 재학 중이던 1931년 7월 동래소년동맹 간부로 활동하면서 적기회라는 비밀 결사에 가담하였다. 적기회는 1931년 7월 초부터 비밀 회합을 거듭한 끝에 7월 중순경 동래소년동맹 간부였던 동래고등보통학교의 김명돌(金命突)·이치우(李致雨)·권동수(權東洙)·김응찬(金應燦)·김응엽·성달덕 등이 중심이 되어 20세 전후의 청년 학생 56명이 모여 조직한 단체였다.

적기회는 산하 연락부·서무부·직접행동부·조직선전부·출판부·재정부를 두고 출판에 이치우, 재정에 김명돌, 조직 선전에 권동수로 책임을 분담하였다. 그리고 7월 20일 첫 사업으로 『적색 뉴스』 창간호를 인쇄하여 회원에게 배부하였다.

이후 성달덕이 오사카로 진출하면서 조직을 해체하였다가, 9월 초에 다시 결사의 명칭을 동래반제전위동맹(東萊反帝前衛同盟)으로 고치고 계속하여 기관지를 인쇄·배부하였다. 이들은 동래반제전위동맹의 세포 기관으로 동래고등보통학교 학생사회과학연구회, 동래고등보통학교 적색스포츠단, 수영무산청년회 및 기장사회과학연구회 등을 조직하였다. 동래반제전위동맹은 1931년 11월 러시아 혁명 기념일에 즈음해 안영달 등이 작성한 ‘노농 러시아 혁명 일을 시위하고 기념하자’라는 제목의 격문 1,500장을 부산부 내에 살포하였다.

그리고 1932년 새해 연두 사업으로 노동자 총파업을 감행하고자 12월 25일 반전격문 1,300장을 만들어 1932년 1월 1일을 기하여 부산지구 헌병대와 부산의 중요 공장 지대에 살포하였다. 이 사건으로 김응엽은 김명돌·권동수·이치우 등과 함께 1932년 1월 체포되어 1932년 9월 부산지방법원에서 「치안 유지법」, 「출판법」 위반으로 2년 6개월의 징역형을 언도받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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