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68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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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繪畫式地圖 |
영어의미역 | Pictorial Map |
분야 | 지리/인문 지리,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기혁 |
[정의]
부산의 지리 정보를 회화 기법으로 묘사한 지도.
[개설]
화원들은 실경 산수화 제작에 익숙하였기 때문에 지도를 그리는 데 있어서 현대 지도에서 사용하는 상징적인 기호보다는 실경을 통해 지리 정보를 표현하였다. 장소의 묘사에서 회화적인 내용을 많이 반영하였는데, 현재 남아 있는 대표적인 회화 지도로는 한양이나 평양, 전주, 경주 등을 중심으로 그린 도성도, 기성도 등이 있다. 지리 정보 표현에서는 비과학적 방법으로 여겨졌으나 장소의 이미지를 전달하는 데 효율적이었고 때로는 예술적인 가치도 지녔다. 지리 정보의 묘사에서 실경을 이용한 표준화된 부호를 사용하면서 회화 기법이 반영된 회화식 지도가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부산의 회화식 지도]
조선 시대 부산의 대표적인 회화식 지도로는 1872년에 그려진 군현 지도[이하 『1872 군현 지도』(규장각 한국학연구원)]와 이를 모사한 「동래 부산 고지도」[국립중앙도서관], 『부산 고지도』[동아대학교 박물관]가 있다. 『1872 군현 지도』의 제작 배경을 살펴보면, 1866년 병인양요와 1871년 신미양요를 겪으면서 서양 세력의 동점에 대한 대응책으로 1871년 전국 각 고을의 읍지가 편찬되고 1872년에 지도가 제작되었다. 지도는 전국의 군사 시설과 군현 단위의 지리 정보 파악의 일환으로 458매가 제작되었다.
기본적으로 군사적인 측면, 특히 해방(海防)이 강조된 지도로 진보(鎭堡) 등 군사 시설의 지도를 별도로 제작하였다. 회화적 아름다움을 지니면서도 산과 하천, 성곽, 읍치 구조, 방리, 역참, 장시 왕릉, 사찰 등 지역의 지리 정보가 다른 어느 지도보다도 상세하다. 이들 지도 중 부산을 대상으로 제작된 지도는 11매로서 그중 9매가 진지도이다. 이것을 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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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 「1872 군현 지도 동래부 지도」를 보면 지도 구성에서 동쪽의 산지는 개화식으로 묘사하고 있으나 서쪽의 산지는 남에서 북쪽으로 향하는 시선을 채택하고 있다, 영도의 표현도 남에서 북으로 향하고 있다. 낙동강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거의 일직선으로 묘사하고 있어 서쪽과 지리적인 경계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표현되어 있다. 대마도는 동쪽 하단에 실경으로 표현하였으나 다른 섬들에 비해 원경만을 그려 넣고 있다.
사용 색채에서 청색은 바다와 하천을, 적색은 도로와 봉수대를 표현하는 데 사용하였다. 청록색의 경우 농담(濃淡)의 차이를 통해 산지의 규모를 표현하고 있다. 특히 산지는 계명봉을 중심으로 서쪽으로는 다대포의 몰운대와, 동쪽으로는 해운대의 장산으로 이어지는 줄기와 함께 그 가운데로 동래 읍성을 잇는 줄기가 청록색으로 묘사되어 전체적으로 실경 산수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지리 정보 표현에 사용된 회화적 기법을 보면, 금정산성과 동래 읍성의 성곽의 여장을 실제 모습과 유사하게 그렸으며, 건물 모습을 통해 관아의 분포를 나타내고 있다. 특히 동래 읍성에서는 여장뿐만 아니라 남문의 익성과 동문·서문·북문의 옹성 모습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였다. 성곽 내부는 홍살문과 함께 건물 크기를 통해 관청의 위계를 표현하였다. 좌수영과 부산진성에는 선박이 정박하고 있는 모습을 그렸으며, 선창장의 모습도 실제와 유사하다.
「1872 군현 지도 경상 좌수영 영지 도형」, 「1872 군현 지도 부산진 지도」, 「1872 군현 지도 서평진 지도」, 「1872 군현 지도 다대진 지도」, 「1872 군현 지도 개운진 지도」, 「1872 군현 지도 두모진 지도」는 표현 방법이 비슷하고, 일부 지도의 경우 「1872 군현 지도 동래부 지도」를 부분 확대한 인상을 주고 있다. 이는 이들 지도가 동일한 화원에 의해 일괄적으로 그려진 것임을 보여준다. 「1872 군현 지도 기장 지도」의 경우 이들 지도와는 사용 색채가 다를 뿐 아니라 산세 표현의 방법도 매우 강하다. 당시 웅천현에 속해 있던 지역 지도인 「1872 군현 지도 가덕진도」와 「1872 군현 지도 천성진도」는 유사한 회화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동래 부산 고지도」와 『부산 고지도』의 경우 전체 구도는 「1872 군현 지도 동래부 지도」와 유사하다. 그러나 『부산 고지도』의 경우 산맥의 줄기를 매우 강하게 표현하였으며, 계명봉·고단봉의 경우 산봉우리를 날카롭게 표현함으로써 전체적인 분위기는 매우 강하다. 마치 조감도를 보는 듯하며 그 사이의 분지도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동래 부산 고지도」의 경우 부산 일대의 마을을 매우 섬세하게 그려 놓았다. 동래 읍성의 마을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필치와 색채의 사용에 있어 높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병풍식으로 제작된 『부산 고지도』는 부산이 개항된 이후인 1900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공간 구성을 보면 지도의 좌측에 동래 읍성으로부터 우측에 부산포 일대를 그려 시선의 방향은 내륙에서 바다로 향하고 있다. 산수의 형상, 성곽 주변의 경관, 항만, 선박 등을 비교적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부산은 조선 시대 명승지가 많고 한일 교류의 중심 거점으로 많은 화원들이 활동하였던 곳이다. 이들에 의해 지도가 그려지면서 다른 곳에 비해 회화적 기법이 가미된 지도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이들 회화식 지도는 조선 시대 당대인들이 지녔던 장소 이미지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회화와 지도의 경계를 볼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