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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빌리지 제사 유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6342
한자 -祭祀遺蹟
영어의미역 World Cup Village Ancestral Rites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민간 신앙 유적
지역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청광리 산2|산3
시대 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안성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제사 유적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10년 4월 12일~2011년 8월 22일연표보기 - 발굴 조사
현 소재지 제사 유적 -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청광리 산2지도보기
현 소재지 제사 유적 -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청광리 산3지도보기

[정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청광리에 있는 고대의 제사 유적.

[개설]

월드컵 빌리지 제사 유적은 행정 구역상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청광리 산2, 청광리 산3번지 일원에서 5세기 중반부터 6세기 전반 무렵까지 행해진 제례 의식의 흔적이 남아 있는 유적이다.

[위치]

월드컵 빌리지 제사 유적은 기장군청에서 울산 방향으로 5분 정도 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아시아드 골프장이 나타나는데, 이 골프장으로 오르는 육교를 올라 왼편으로 200~300m 정도 가다 보면 왼편으로 야트막한 구릉 정상부가 보이는 지역에 위치한다.

[형태]

월드컵 빌리지 제사 유적은 2010년 4월 12일부터 2011년 8월 22일까지 실시한 발굴 조사에서 확인되었다. 제사 유적이 위치하는 구릉의 해발 고도는 55m 정도이며, 남쪽·서쪽·북쪽 사면은 비교적 완만한 경사를, 동쪽과 북동쪽은 급경사를 이룬다. 구릉 정상부는 현대 민묘 조성과 후대 자연적인 침식 작용으로 인하여 유실이 심하다.

조사 결과 삼국 시대 호(壕) 2개소, 목책(木柵) 9열, 수혈 건물지(竪穴建物址) 2동, 구상 유구(溝狀遺構) 8기, 수혈(竪穴) 64기, 배수로 2기, 석곽(石槨) 1기와 조선 시대 수혈 1기·분묘(墳墓) 1기, 그리고 주혈(柱穴)[기둥 구멍] 230기가 확인되었다. 발굴 조사에서 확인된 호는 2개소이며, 능선 정상부를 두른다. 호 1의 내부에는 회갈색 사질 점토층 상부에 10~40㎝ 내외의 할석(割石)이 다량 확인되었다. 대부분의 할석들이 무질서한 상태로 노출된 것으로 보아 자연적으로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 유물은 적갈색 연질 단지[壺]와 회청색 경질 단지, 짧은 다리가 붙은 굽다리 접시[短脚高杯] 대각편(臺脚片)[받침다리 조각]과 개편 등이 출토되었다.

호 2는 호 1에서 890~1,050㎝ 정도 떨어진 지점인 해발 49~52m를 따라 정상부를 두른다. 호 2는 전체적으로 삭평과 후대 훼손이 심한 상태이다. 출입구는 남쪽과 북동쪽에서 확인되며, 개거식(開渠式)으로 주혈과 같은 부속 시설은 확인되지 않는다. 잔존 상태가 양호한 남쪽 출입구의 폭은 190㎝ 정도이다. 유물은 굽다리 접시[高杯] 대각편, 굽다리 목 긴 항아리[臺附長頸壺] 대각편 및 동체부편, 적갈색 연질 토기가 출토되었다. 시기적으로는 5세기 중반·후반 이후에 해당한다. 다만, 호 2보다 이전 시기에 설치된 수혈 51호에서 뚜껑 없는 짧은 다리가 붙은 굽다리 접시[無蓋短脚高杯]가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호 2는 5세기 후반이나 6세기 전반 무렵에 설치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9열의 목책이 확인되었다. 목책은 호 1을 기준으로 구분이 가능하다. 즉 호 1과 호 2 사이에는 구릉 정상부를 두르는 목책 4열, 호 1 내부에서 확인되는 목책은 구릉 정상부 전체를 두르지 않고 부분적으로 확인되는 목책 4열, 그리고 호 2의 북동쪽 출입구 부분에 목책 1열이 확인되었다.

[의례]

월드컵 빌리지 제사 유적은 구릉 정상부를 두르는 호 2개소와 목책 9열이 확인되었다. 하지만 호와 목책 내부에서 의례 행위와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대형의 건물지 및 고상 건물지 등의 유구는 확인되지 않는다. 따라서 월드컵 빌리지 제사 유적 내부에서는 일상적인 의례 행위보다는 공간 자체가 신성한 지역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현황]

월드컵 빌리지 제사 유적해평 김씨 선산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훼손이 심하게 이루어진 상태이다. 특히 원형 보존 구간을 제외하고는 에코파크 공사로 인하여 원형을 파악하기 힘들다.

[의의와 평가]

월드컵 빌리지 제사 유적은 저 구릉성 산지를 중심으로 하나의 단위 취락으로서 삼국 시대 사람들의 생활 공간과 매장 공간, 의례 공간으로 활용되었음이 확인되었다. 특히 각 공간들이 의례 공간을 둘러쌓듯 배치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의례 공간을 가장 중요시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월드컵 빌리지 제사 유적을 통해 2~7세기에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청광리, 원리, 동백리 일대에서 거주하였던 사람들의 단위 마을과 그들의 생(生)과 사(死)의 복원에 있어 중요한 자료를 제공할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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