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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산 염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6073
한자 菉山鹽田
영어의미역 Salt Pond in Noksan
분야 역사/근현대,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
시대 조선/조선,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류승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염전
소재지 녹산 염전 소재지 -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

[정의]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에 있던 조선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소금을 생산하던 염전.

[개설]

녹산 염전(菉山鹽田)은 인근의 명지 염전과 함께 낙동강 하구의 대표적 염전이었다. 낙동강 하구의 염전을 명지·녹산 염전이라 부르는 것은 김해군 명지면[현 부산광역시 강서구 명지동]과 녹산면[현 강서구 녹산동]에 염전이 집중적으로 몰려 있었기 때문이다. 낙동강 하구의 염전에서 생산된 소금은 낙동강을 따라 운반되었으며, 영남의 주민들은 대부분 이 소금을 먹고 생활하였다.

녹산면에서 가장 제염업이 활발하였던 곳은 송정 마을이다. 1950년대까지 송정 마을에는 7개의 염전이 있었으며, 송정 마을의 주민들은 대부분 염전에서 일해 생계를 유지하였다. 사암 마을에는 큰가마 염전, 아랫가마 염전, 뒷가마 염전 등 3개의 염전이 있었다. 일본인이 운영하던 큰가마 염전은 약 3,966.94㎡[1,200평] 규모로 해방 후 양승일이 소유하였다. 아랫가마 염전은 약 4만 9586.78㎡[1만 5000평] 규모로 김종실이 소유하였고, 뒷가마 염전은 약 3,305.79㎡[1,000평] 규모로 박명찬이 소유하였다.

[변천]

조선 시대에 녹산 염전은 전통적인 제염 방식인 채함(採鹹) 과정을 거쳐 짠물을 끓여서 만드는 자염(煮鹽)을 생산하였으며,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식 전오염(煎熬鹽) 제염법을 도입하였다. 1950년대는 천일염의 영향으로 쇠퇴하였다가, 1959년 사라 태풍으로 큰 피해를 입은 후 정부로부터 보상을 받고 폐전이 되었다. 이후에는 대파를 경작하면서 파밭으로 변모하였다.

[위치]

녹산 염전김해군 녹산면의 송정, 방근, 사암, 녹산 마을 등에 위치하였다. 폐전된 이후로 매립이 되고 공단과 도로 등으로 바뀌어서 정확한 위치를 찾기가 어렵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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