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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구 시랑골 모분재」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5916
한자 北區侍郞-慕盆齋
영어의미역 Mobun-jae Ceremony in Buk-gu Sirang-gol
이칭/별칭 「시랑골 모분재」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
시대 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곽지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설화|전설
주요등장인물 시랑
모티프유형 지명·글자·정자 유래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8년 2월 20일 - 『부산 북구 향토지』에 「시랑골 모분재」라는 제목으로 수록
관련 지명 시랑골 -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지도보기
채록지 구포동 -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

[정의]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 시랑골 마을에서 모분재(慕盆齋)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채록/수집 상황]

1998년 북구향토지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부산 북구 향토지』에 「시랑골 모분재」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채록자와 채록 일시는 분명하지 않다.

[내용]

신라가 가야를 멸망시켰을 때의 일이다. 가야 사람들은 나라를 잃고 일본으로 건너가거나 깊은 산골에 은신하였다. 현재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대리천이 흘러내리는 언덕 위에 가야에서 시랑 벼슬을 하던 사람이 피신해 들어와 살았다. 그래서 지금도 그 일대를 시랑골이라고 한다. 한편, 그 사람은 멀리 김해 땅[가야의 땅]이 보이는 언덕 위에 정자를 짓고 나라를 잃은 허망함을 달랬다. 그리고 언덕의 바위에 ‘모분재’라는 글자를 새겼는데, 이는 가야의 중심 근거지였던 ‘분산(盆山)’을 잊지 못해 재를 올린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또한 이 정자에서 옛 가야 사람들이 모여 나라 잃은 슬픔을 나누었는데, 모였던 벗들을 떠나보낸다고 하여 정자의 이름을 ‘송우정(送友亭)’이라 하였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북구 시랑골 모분재」의 주요 모티프는 ‘지명·글자·정자 유래’ 등이다. 「북구 시랑골 모분재」가야가 망하자 시랑 벼슬을 하던 사람이 들어와 살아서 시랑골이 되었다는 마을 이름의 지명 유래와, 가야 땅이 보이는 언덕에 정자를 짓고 바위에 ‘모분재’라고 새겼는데 이는 ‘분산’을 잊지 못해 재를 올린다는 글자 유래담이며, 슬픔을 나누던 벗들을 떠나보낸다고 하여 ‘송우정’이라고 하였다는 정자 유래담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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