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58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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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蓬萊山山祭堂-堂 |
영어의미역 | Mountain Shrine and Lady Shring in the Bongnae Mountain |
이칭/별칭 | 「산제당과 아씨당 전설」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부산광역시 영도구 |
집필자 | 곽지숙 |
[정의]
부산광역시 영도구에서 산제당(山祭堂)과 아씨당(阿氏堂)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봉래산 산제당과 아씨당」은 신돈(辛旽)[?~1371]의 모함으로 절영도(絶影島)에 유배된 최영(崔瑩)[1316~1388] 장군의 첩이었던 선녀 때문에 말이 병들어 죽어 버리는 일이 발생하자 정발(鄭撥)[1553~1592]이 이를 조정에 아뢰고, 동래 부사 송상현(宋象賢)[1551~1592]이 선녀의 혼을 위로하고자 산제당과 아씨당을 짓고 해마다 제를 올렸다는 산제당과 아씨당의 유래담이자, 제당 설립과 기원을 밝히는 당신화(堂神話)이다. 신라 시대부터 절영도의 국마장(國馬場)과 관련된 전설이 깃든 산제당과 아씨당은 원래 영도초등학교 부지 안에 있었던 것을 1915년에 지금의 영도 봉래산 중턱[부산광역시 영도구 신선동 2가 141번지]으로 옮긴 것이라 한다. 산제당과 아씨당에서는 해마다 두 차례[음력 1월 15일, 9월 15일]에 걸쳐 당제를 모신다.
[채록/수집 상황]
2010년 2월 영도구청에서 시행한 『영도 문화 관광 콘텐츠 개발 스토리텔링 사업 최종 보고서』의 35~37쪽에 「산제당과 아씨당 전설」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었다. 채록자와 채록 일시는 분명하지 않다.
[내용]
조선 시대에 영도에는 나라에서 경영하는 국마장이 있었다. 그런데 영도에서 말을 실어갈 때에 서쪽으로 끌고 가기만 하면 말이 병들어 죽어 버리는 일이 생겼다. 그러던 차에 한 선녀가 노복 두 사람을 데리고 절영도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는데, 나오는 것을 본 사람이 없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이때, 정발이라는 무관이 부산진 첨사로 새로 부임해 왔다. 그는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문을 듣고 군마들이 병들어 죽는 이유가 선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정발의 꿈에 한 선녀가 나타났다. 그 선녀는 자신은 천상에서 쫓겨나 탐라국 여왕이 되었다가 최영 장군이 탐라를 점령할 때 그의 첩이 되었는데, 최영 장군이 탐라를 떠난 뒤 신돈의 모함으로 절영도에 유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절영도에 왔지만 끝내 최영을 만나지 못하고 한 많은 귀신이 되었으니 자신을 위해 사당을 짓고 혼을 위로해 달라고 했다. 정발은 자신이 꾼 꿈 이야기를 조정에 아뢰었고, 조정에서 동래 부사 송상현에게 명하여 산제당과 아씨당을 짓고 해마다 봄·가을에 제를 지내게 하였다. 그 이후부터는 군마가 폐사하는 일이 사라지게 되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봉래산 산제당과 아씨당」의 주요 모티프는 ‘원귀 신원(寃鬼伸寃)’이다. 억울하게 죽은 귀신의 원한을 풀어 준다는 식의 원귀 신원 모티프를 가진 이야기는 전국적으로 널리 분포되어 있다. 특히 「봉래산 산제당과 아씨당」은 최영, 신돈, 정발, 송상현 등의 실존 인물이 등장하고 영도의 국마장이라는 역사적 배경 등의 흥미로운 스토리를 품고 있다. 또한 제주도민들이 영도로 이주했던 역사적 사실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이를 통해 전설의 역사성의 한 일면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