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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5630
한자 民衆美術
영어의미역 People’s Art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종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87년연표보기 - 그림패 낙동강 창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88년 - 그림패 낙동강에서 부산미술운동연구소로 개편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부산미술운동연구소에서 탈퇴한 그룹이 해빙 창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1년 - 부산미술운동연구소에서 민족민중미술운동전국연합의 지역 조직인 부산민족미술인연합으로 개편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1년연표보기 - 부산미술운동연구소에서 탈퇴한 그룹이 부산지역청년미술인회 창립
1993년 - 민족민중미술운동전국연합 해소와 함께 부산민족미술인연합도 해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4년연표보기 - 부산민족미술인연합의 계승으로 새물결 창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5년연표보기 - 해빙과 부산지역청년미술인 및 새물결 일부가 가마골미술인협의회 창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7년연표보기 - 청년 미술가 단체인 뚝 창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0년연표보기 - 가마골미술인협의회에 새물결, 뚝이 합류해 부산민족미술인협회 창립
관련 기관/단체 그림패 낙동강 - 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
관련 단체 부산미술운동연구소 -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동 산37-1 경성대학교지도보기
관련 단체 부산미술운동연구소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양정동 394-31 고려 빌딩지도보기
관련 단체 새물결 공동 작업실 - 부산광역시 수영구
관련 단체 뚝 공동 작업실 - 부산광역시 연제구 연산동지도보기
관련 기관/단체 부산민족미술인협회 - 부산광역시

[정의]

부산 지역에 1980년대 중반 등장한 리얼리즘 미술.

[민중 미술의 등장과 전개]

민중 미술은 5·18 민주화 운동의 과정에서 국가에 의해 자행된 광주 학살과 폭력에 저항하고, 기존 미술계의 고답적이고 추상적인 화풍을 극복하고자 등장한 미술계의 새로운 흐름이다. 이를 위해 민중 미술은 역사와 민중을 형상화하는 리얼리즘 미술을 추구하였고, 판화와 걸개그림으로 대표되는 미술 작업을 통해 사회적 실천 운동에 참여하고자 하였다. 시기적으로 민중 미술은 1980년대 전반의 형성기, 1980년대 후반의 확산기, 1990년대 이후의 결실기를 거치면서 전개되었다.

1. 소집단 운동과 민중 미술의 형성[1980~1984년]

이 시기는 소집단 미술 운동이 대두하며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미술의 흐름을 만든 시기다. 이는 기존 미술계의 폐쇄성에 대한 도전이자, 현실을 반영한 리얼리즘 미학을 확보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한편으로 여기에는 1970년대 유신 체제라는 암울한 현실 속에서 자아와 현실을 찾아 나섰던 작가들의 개인적 고뇌도 포괄되어 있다. 1980년대 벽두에 대두된 이러한 활동은 ‘현실과 발언’, 광주자유미술인협의회, 임술년, 두렁, 서울미술공동체 등 소집단의 작업에 요약되어 있다. 이들은 역사와 민중을 화폭에 끌어옴으로써 민중 미술을 형성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2. 전국 미술인 조직의 결성과 미술 운동의 확산[1985~1989년]

1985년 민족미술협의회와 1988년 민족민중미술운동전국연합의 결성을 기점으로 조직적인 미술 운동이 전개된 시기이다. 소집단 미술 운동으로 민중 미술의 씨앗을 틔운 미술인들이 마침내 전국 규모의 민중 미술인 조직을 건설하기에 이른 것이었다. 이 시기에는 미술의 사회적 기능이 확장되면서 미술 활동이 정치·사회 문제와 깊이 연계되었다. 특히 사회 운동이 고조되는 것과 맞물려 현장 미술이 등장하여, 걸개그림과 판화를 비롯하여 벽화와 생활 미술 등이 왕성하게 제작되었다. 미술 활동의 현장도 기존의 화랑 미술을 벗어나 공장, 농촌, 대학가, 집회장과 가두 등의 지역 현장으로 확장 변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3. 창작의 결실과 진전[1990년~현대]

1990년대 이후는 국내외 정세의 변화와 함께 민중 미술이 현장 미술에서 화랑 미술로 복귀하고, 개인의 창작이 다시 예술적 성과로 수렴되는 시기이다. 이 시기의 민중 미술은 세대에 따라 경향을 달리하면서 다양한 양식이 함께 자리를 잡게 된다. 이에 1994년 국립 현대 미술관에서 열린 기획전인 민중 미술 15년전은 민중 미술이 제도권 미술로부터 당당한 평가를 받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는 민중 미술의 제도권 내 진입을 의미하는 것으로 인식되었고, 이 때문에 민중 미술 15년 전은 민중 미술 장례식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부산 지역의 민중 미술]

민중 미술이 등장하기 전 부산의 미술계는 산수화, 추상화가 주를 이루었다. 이러한 화풍은 지역민의 사회적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이었고, 미술을 향유하는 것은 소수의 유한층에 불과하였다. 이에 민중의 삶과 사회적 현실을 작품에 담아 지역민을 미술의 세계로 끌어들인 민중 미술은 부산 미술계의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이는 대학가에서 시작되었다.

1980년대 초 학생 운동의 열기 속에 부산의 대학가에서도 미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그 중심은 미술 동아리의 학생들로, 이들은 미숙하지만 소박한 형태로 선전물을 제작하는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 가운데 일부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 제5 공화국의 균열 국면이 전개되자, 대학가 안팎에서 치열한 미술 활동이 시작되었다.

그 성과는 1986년 부산 최초의 공동 창작물인 한국 민중 100년사전으로 나타났다. 이듬해인 1987년 이석규 열사의 장례에 걸개그림과 영정 제작으로 참여하면서 부산에서도 미술과 사회를 접목시키는 활동이 본격화되었다. 이러한 공동 작업의 경험은 민중 미술 단체의 설립을 촉진하여, 1987년 부산의 독자적 민중 미술 단체로 그림패 낙동강이 창립되었다. 1988년 그림패 낙동강의 구성원 가운데 일부가 생활 문화 공간인 꽃다림으로 분리되어 나간 뒤, 그림패 낙동강부산미술운동연구소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어서 직접적인 사회 참여보다 예술적 완성도를 중시한 일군의 작가들이 탈퇴하였다. 이후 부산미술운동연구소는 조직을 더욱 체계화하여, 현장성과 사회성을 중시하는 미술 활동을 전개하였다.

1990년에 접어들면서 매체별 문화 운동 조직이 활성화되면서 새로운 문화 예술 환경이 조성되었다. 이에 미술 운동 단체의 전국적인 연합체를 구축하기 위한 움직임이 전개되었다. 이는 특정한 시민 단체나 노동조합 단위의 선전 부대로 활동하던 이전까지의 방식을 지양하고, 미술가가 독자적인 조직과 투쟁의 주체가 되는 한 단계 진보한 미술 운동의 형식이었다. 그 결과 1991년 현장 미술 활동을 중심으로 하는 민족민중미술운동전국연합이 창립되었다. 이에 부산미술운동연구소는 그 지역 조직이 되었고, 부산민족미술인연합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한편으로 1990년대 초에는 부산미술운동연구소에서 탈퇴한 뒤 독자적으로 리얼리즘 미술을 추구하며 화랑 전시를 중심으로 활동한 작가들도 있었다. 해빙과 부산지역청년미술인회가 대표적인 경우이며, 이외에 개별적인 활동을 하는 작가들도 생겨났다. 이렇게 부산 지역에서는 현장과 화랑을 중심으로, 각기 두 갈래의 민중 미술이 전개되었던 것이다. 1993년 변화된 국내외적인 정세 속에서 민족민중미술운동전국연합이 해소를 결정함에 따라 부산민족미술인연합도 해체되었다. 그 결과 현장에서의 민중 미술은 약화되었고, 사회 운동으로서의 민중 미술은 역사적 소명을 다하였다.

이후 1년 반쯤 지난 1994년 부산민족미술인연합의 계승을 자처하는 청년 미술가 모임인 새물결이 창립되었다. 1995년 해빙과 부산지역청년미술인과 새물결은 일부 개별 미술가들을 포함시켜 가마골미술인협의회를 창립하였다. 2000년 가마골미술인협의회새물결의 일부 회원과 대학의 그림패 출신으로 결성된 청년 미술가 단체인 을 합류시킴으로써, 부산 지역 민족 미술인 조직의 단일화를 이루었다. 이에 명칭도 부산민족미술인협회로 개칭하여 활동을 이어오다가 2011년부터 사실상 활동을 멈추고 있다.

[부산 지역 민중 미술의 의의]

민중 미술은 사회 현실을 소재로 표현의 다양성을 실현함으로써, 미술의 사회적 기능을 비약적으로 확장시켰다. 그 결과 지역민을 미술의 향유층으로 끌어들였으며, 우리 미술계가 국제적으로 주목받게 만들었다. 또한 민중 미술의 활동과 지향성은 이후 지역 미술의 담론이 되었으며, 공공 미술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였다. 민중 미술에 참여하였던 작가들은 오늘날에도 여러 가지 활동을 통해 지역 미술계를 풍성하게 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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