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54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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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羅里祭祀遺蹟 |
영어의미역 | Remains of Daera-ri Ancestral Rites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민간 신앙 유적 |
지역 |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대라리 산15-1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안성현 |
[정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대라리에 있는 삼국 시대 제사 유적.
[개설]
대라리 제사 유적(大羅里祭祀遺蹟)은 경남문화재연구원에서 2005년 5월부터 2008년 6월까지 실시한 발굴 조사를 통해 확인되었다. 조성된 대지의 상면에는 토기 조각이 산포되어 있었으며, 절토한 암반 상부의 바위나 돌 사이에서도 토기를 끼워 얹어 놓은 채로 확인되었다. 이들 토기는 정상부에 유구(遺構)가 전혀 없는 점으로 미루어 상부에서 흘러 내려올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따라서 유구는 암반을 인위적으로 절토하여 수평을 맞춰 대지를 조성한 점, 대지 앞에 할석을 열상으로 설치하고 가공한 석재로 어떤 모형을 만든 점, 대지의 상면과 암반 사이사이에 토기가 얹혀 있는 점 등으로 보아 제사 유적으로 추정된다. 발굴 조사 결과 제사 유적이 확인된 독립 구릉은 6열의 목책이 정선부를 두르며, 정상부의 남쪽 비탈면에는 대형의 고상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위치]
대라리 제사 유적은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대라리 산15-1번지 일원에서 확인된 유적으로, 남서쪽의 양당산[282m]에서 북동쪽으로 뻗은 구릉 중턱에 해당하며 해발 고도는 약 100~130m이다. 발굴 조사 지역 최북단에 해당하는 독립 구릉 정상부를 두르는 6열의 삼국 시대 목책열 내부의 남동쪽 아래인 해발 137m 지점에서 확인되었다. 기장군 기장읍 중심지의 남쪽에 있는 기장군 기장읍 청강리와 대라리의 경계 지점으로, 기장읍에서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송정동 방향으로 이어지는 국도에 위치한 무곡 마을의 배후 산지 일대에 해당한다.
[형태]
대라리 제사 유적은 지표에 드러난 암반을 인위적으로 깎아 길이 20m, 너비 5m 정도의 대지를 조성하였고 전체적으로 수평을 맞추었으며, 대지의 경사면 아래쪽으로는 경화면이 확인되었다. 한편, 절토한 암반에서 남쪽으로 40㎝, 55㎝ 정도 떨어져 동쪽에서 서쪽으로 크기 15×20㎝ 정도의 할석을 길이 약 155㎝로 하나씩 세워 놓았다. 암반의 동편에는 크기 25×65㎝ 정도의 가공한 석재를 너비 10㎝ 정도를 이격하여 양쪽으로 대칭되게 2매를 세우고, 상부에는 길이 약 40㎝의 석재로 마감하였으며 그 사이에 1개의 할석을 끼워 놓았다.
[의례]
제사 유적은 구릉 정상부와 인접한 남동쪽 비탈면에 위치하는데, 유구의 잔존 상태로 보아 제의 행위가 이루어지면서 토기를 매납(埋納)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대라리 제사 유적이 월드컵 빌리지 제사 유적에서 확인된 것과 같이 구릉 정상부 전체가 의례 공간이었는지, 아니면 목책과 동 시기이었는지 분명하지 않다.
[현황]
대라리 제사 유적은 발굴 조사 이전의 원상이 잘 보존되어 있었으나, 부산~울산 간 고속 도로가 개설되면서 유실되어 현상을 파악할 수 없다.
[의의와 평가]
대라리 제사 유적은 동에서 서로 뻗어 내린 구릉이 다시 솟아 오른 독립 구릉의 형태로 조사 구역 각 구릉이 내려다보이고 구릉 정상부에서는 기장 일대 및 바다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지형을 선택하여 고분을 축조하고, 다른 구역은 생활공간으로 사용하였으며 특히 이 모든 공간을 모두 조망할 수 있는 곳에 제사 공간을 만들고 목책을 설치하였다.
따라서 대라리 제사 유적은 삼국 시대 기장의 최고 지배 집단의 묘역, 생활공간, 제사 공간이 일정 공간의 구릉 일대에 형성되어 당시 중심지의 상황을 보여 주며 문헌에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는 기장의 고대 역사 복원에 중요한 고고학적 자료를 확보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