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53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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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內院禪社 |
영어의미역 | Naewonseonsa Temple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기관 단체/사찰 |
지역 |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청룡동 546]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정미숙 |
[정의]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 범어사 소속 사찰.
[개설]
개항기 우리나라 불교계는 선방(禪房)을 중심으로 인재 양성과 중생 교화, 그리고 신풍(新風)을 진작시켜 한국 불교의 주체성을 확립하려고 하였다. 범어사에서도 주지 오성월(吳惺月)이 경허(鏡虛) 대사를 범어사로 초청하여 선풍을 진작하기 위해 노력하였는데, 금강암[1899]을 시작으로 많은 선원을 개설하였다.
[건립 경위 및 변천]
내원선사(內院禪社)는 1901년 음력 4월 10일 개설되었다. 해인사에 머물던 오성월이 범어사로 돌아왔을 때 내원암의 원주인 승려 혼해(混海)가 장소와 쌀 20두를 제공하여 시작되었다. 오성월을 비롯한 승려 3명이 참여하였다. 이들은 1901년 하안거, 동안거를 지나 1902년 1월 15일[음력]까지 선수행을 계속하였다. 내원암에서는 1905년 다시 내원선사가 개설되었다. 승려 담해, 성월, 포응(抱應)이 발기하였는데, 안거 기한은 영구로 수행한 승려는 19명이다. 선량(禪糧)은 220석이었으며, 이때 계명암의 전답을 나누어 내원암으로 이전시켰다.
[활동 사항]
선원은 강원의 사교과(四敎科)와 대교과(大敎科)를 수료하고, 비구계를 받고 들어가 공부하는 곳이다. 선원에서는 규칙[선원 청규(禪院淸規)]를 정하여 엄격하게 수행하였다. 범어사의 승려들은 하루 참선 8시간, 경학(經學)은 8시간 공부하여 다른 선원과 달리 선교 일치(禪敎一致)적 입장을 취하였고, 이 과정을 통해 선학(禪學)을 깊이 이해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의의와 평가]
범어사의 선원 개설은 개항기 일본 불교의 유입에 맞선 우리나라 불교의 회복 운동인 ‘선풍 진작 운동’의 일환이었다. 범어사는 일련의 선사를 개설하면서 선찰 대본산(禪刹大本山)으로서의 위상을 가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