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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5121
한자 鷄鳴禪社
영어의미역 Gyemyeongseonsa Temple
분야 종교/불교
유형 기관 단체/사찰
지역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청룡동 546]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정미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선원
창건자 오성월
건립 시기/일시 1902년 4월 1일[음력]연표보기 - 건립
최초 건립지 범어사 계명암 -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청룡동 546]지도보기
현 건립지 범어사 계명암 -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청룡동 546]지도보기

[정의]

부산광역시 사하구 당리동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 송광사의 부산 분원.

[개설]

개항기 우리나라 불교계는 선방(禪房)을 중심으로 인재 양성과 중생 교화, 그리고 신풍(新風)을 진작시켜 한국 불교의 주체성을 확립하려고 하였다. 범어사에서도 주지 오성월(吳惺月)경허(鏡虛) 대사범어사로 초청하여 선풍을 진작하기 위해 노력하였는데, 금강암[1899]을 시작으로 많은 선원을 개설하였다.

[건립 경위 및 변천]

계명선사(鷄鳴禪社)는 1902년 4월 1일[음력] 개설되었다. 발기인은 오성월이며, 안거 기한은 영구이고, 참가 승려는 17명이다. 선량(禪糧)으로 조성된 쌀은 70석이었다. 내원 선사를 해제한 후 오성월이 계명암주(鷄鳴庵主)가 되어 주도하였다. 운영 기금으로 모은 것이 백미 64두(斗), 총액 4,400냥(兩)이었다. 이 기금에서 4,000냥으로 답토(畓土)를 매수하고, 400냥은 선사 비용으로 충당하였다. 계명암은 이미 소유하고 있던 토지 등을 합하여 124마지기[斗地]의 토지를 소유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선사를 유지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활동 사항]

선원은 강원의 사교과(四敎科)와 대교과(大敎科)를 수료하고, 비구계를 받고 들어가 공부하는 곳이다. 선원에서는 규칙[선원 청규(禪院淸規)]를 정하여 엄격하게 수행하였다. 범어사의 승려들은 하루 참선 8시간, 경학(經學)은 8시간 공부하여 다른 선원과 달리 선교 일치(禪敎一致)적 입장을 취하였고, 이 과정을 통해 선학(禪學)을 깊이 이해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의의와 평가]

범어사의 선원 개설은 개항기 일본 불교의 유입에 맞선 우리나라 불교의 회복 운동인 ‘선풍 진작 운동’의 일환이었다. 범어사는 일련의 선사를 개설하면서 선찰 대본산(禪刹大本山)으로서의 위상을 가질 수 있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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