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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노인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5102
한자 慶南老人會
영어의미역 Senior Citizens Association, Gyeongsangnam-do, Korea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선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노인 단체|친목 단체
설립자 정순종|유혁
설립 시기/일시 1960년연표보기 - 부산노인구락부로 설립
해체 시기/일시 1961년 5월 16일 이후연표보기 - 해체
개칭 시기/일시 1960년 6월연표보기 - 부산노인구락부에서 경남노인회로 개칭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61년 2월 25일 -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 창립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61년 4월 18일 - 민족자주통일 경남협의회 창립
최초 설립지 부산노인구락부 - 부산광역시

[정의]

부산광역시에 있는 노인 단체.

[설립 목적]

경남노인회는 친일 경력이 없고 통일을 지향하는 인식을 가진 지역 원로들을 결속시켜 통일 운동을 전개하기 위하여 1960년에 부산노인구락부로 설립되었다.

[변천]

일제 강점기에 항일 운동을 전개하고 8·15 광복 직후에 정당 사회단체에서 활동한 부산 지역의 노인들은 1960년 초에 정순종, 권손, 최천택(崔天澤), 유혁 등을 중심으로 ‘부산노인구락부’를 조직하였다. 이들은 4·19 혁명을 거치면서 조직 범위를 경상남도로 넓히는 동시에 ‘구락부’라는 명칭을 바꾸어 그해 6월에 ‘경남노인회’로 개칭하였다. 정순종이 회장, 유혁이 사무국장으로 활동하였다.

경남노인회는 친일 경력자를 제외하고는 가입에 별다른 제한을 두지 않았으므로, 다양한 편력을 지닌 인물을 모으는 데 성공하여 한때 참여 인원이 1,200여 명이 되었었다. 1961년 5월 16일에 박정희(朴正熙)의 군사 쿠데타 이후 정순종은 중앙민족자주통일협의회 사건으로, 유혁은 경상남도 민족자주통일협의회 사건으로 각각 기소되어 투옥되었으며, 이 가운데 정순종은 수감 도중 옥사하였다. 이에 따라 경남노인회는 해체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경남노인회의 주요 활동은 통일 운동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노인층은 그 특성상 통일 문제에 대한 관심과 열의가 다른 계층이나 집단에 비해 매우 높았다. 이 때문에 1961년 2월 25일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의 결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고, 정순종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 통일방안심의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61년 4월 18일에 민족자주통일 경남협의회의 결성을 주도한 세력이 바로 경남노인회였다. 민족자주통일 경남협의회에서 정순종은 상임 의장, 권손은 의장, 유혁은 총무 부장으로 활동하였다. 경남노인회는 『민생 시보』라는 주보(週報)를 발행하기도 하였는데, 주보의 간행은 당시 『부산 일보』의 주필이었던 손풍산이 맡아 주관하였다. 경남노인회의 활동에 필요한 실무는 민주민족청년동맹 경남맹부의 청년들이 지원하였다.

[의의와 평가]

경남노인회는 4·19 혁명 시기의 어떠한 집단보다도 열정적으로 통일 운동에 앞장선 단체로서, 민족자주통일 경남협의회의 결성을 주도하였다는 데 의의가 있다. 특히 노인층의 조직화는 같은 시기의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부산의 독특한 현상으로서, 부산 지역 4·19 혁명의 주요 특징을 형성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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