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50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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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韓國-勞動靑年會 |
영어의미역 | Catholic Labor of Youth |
이칭/별칭 | 지오세(JOC) |
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종교/기독교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로427번길 15[남천1동 69-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차성환 |
[정의]
1970년대 부산 지역에서 노동 운동을 지원한 가톨릭 청년 단체.
[설립 목적]
한국가톨릭노동청년회는 근로의 신성함과 존엄성을 인식하며, 근로의 가치와 근로자로서의 보람을 일깨우기 위하여 조직하였다.
[변천]
가톨릭노동청년회는 1925년 벨기에에서 처음 설립되었다. 한국에서는 1958년 11월 17일 명동성당에서 창립되어, 1960년 서울교구연합회가 결성되었다. 부산에서는 1960년대에 박정일 신부가 초량성당 보좌 신부로 오면서 가톨릭노동청년회를 결성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1963년 1월 한국가톨릭노동청년회 부산지부가 창립되었다.
초기에는 중앙성당, 범일성당, 초량성당, 초장성당 등에서 모인 7명의 남성 회원들로 ‘오륙도팀’을 조직하였다. 여성 회원들은 메리놀병원과 성분도병원의 간호사로 ‘백합팀’과 ‘목화팀’을 결성하였다. 이 회원들은 교육을 받은 후 투사가 되었고 부산교구연합회를 결성하였다. 이어서 초량성당에 ‘동백팀’, 서면성당에 금성사 노동자를 중심으로 ‘금성팀’을 조직하였다. 이후 본당 단위로 활동이 진행되어 동래성당, 범일성당, 초장성당, 송도성당, 중앙성당에 팀이 결성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한국가톨릭노동청년회 활동의 중심은 교육과 봉사 활동이었다. 한국가톨릭노동청년회는 직장별로 팀을 만들어 학습과 토론을 통해 노동 현실에 대한 인식을 높여 갔다. 회원은 일정 기간의 활동과 학습을 거친 후 ‘투사’라는 칭호와 배지를 받았다. 직장 팀은 ‘투사’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1974년 태광산업에서 노동조합 결성을 지원하여, 전국섬유노조 태광산업지부를 결성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 일을 계기로 부산의 한국가톨릭노동청년회는 노동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978년 1월 한국가톨릭노동청년회 전국 회장을 역임한 정인숙이 부산의 동양고무에 입사하여 조직 활동을 시작하고, 부산 한국가톨릭노동청년회의 진병태와 박주미가 삼화고무와 태화고무에서 팀을 조직하였다. 이외에 부산 한국가톨릭노동청년회는 노동 운동을 탄압한 섬유 노조 위원장 출신의 김영태가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으로 출마하자, 1978년 5월 중순 이를 저지하기 위해 부산에 온 동일방직 해고 노동자의 활동을 지원하기도 하였다.
[현황]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동 단체를 중심으로 노동 운동이 전개되면서, 노동 운동에 대한 지원 활동은 축소되었다.
[의의와 평가]
한국가톨릭노동청년회는 도시산업선교회와 더불어 1970년대부터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전까지 노동자의 권리 의식을 일깨우고 근로 조건을 개선하며 초기 활동가를 배출하는 등으로 부산의 노동 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