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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업선교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5444
한자 都市産業宣敎會
영어의미역 Urban Industry Mission
이칭/별칭 도산
분야 종교/기독교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중구 보수동 1가 116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차성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노동자 인권 단체
설립자 박상도
설립 시기/일시 1977년 4월연표보기 - 설립
해체 시기/일시 1980년 5월연표보기 - 해체
최초 설립지 중부교회 - 부산광역시 중구 보수동 1가 116

[정의]

부산광역시 중구 보수동에 있었던 노동자 인권 단체.

[설립 목적]

산업 선교란 현대 산업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응답하고, 사회 구조를 합리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시도하는 교회의 선교로서 산업 사목이라고도 한다. 도시산업선교회는 노동자가 일하고 있는 작업 현장으로 들어가 노동자의 현실을 이해하고 동참하여 아픔을 함께 나누기 위해 설립하였다.

[변천]

1977년 4월 부산 중부교회의 최성묵(崔聖黙) 목사를 회장으로, 박상도를 총무로 설립되었다. 1977년 11월부터 1978년 12월 사이 한 해 동안 다루어진 노동자 부당 처우 문제만 26건에 이르렀을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1980년 신군부의 5·17 계엄 확대 조치로 총무인 박상도가 계엄합동수사단에 구금되고, 이후 정치 상황이 변화되면서 해체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부산 도시산업선교회의 주요 활동은 현장에서 발생하는 노동 문제를 제기하고 지원하는 투쟁, 사례 발표회를 겸한 기도회, 노동자의 교육과 훈련이었다. 부산 도시산업선교회의 존재를 알린 첫 번째 사건은 안드레상사의 부당 해고 사건이었다. 안드레상사의 여직원이었던 오순남이 회사에 불만이 있으면 기탄없이 이야기하라는 경영진의 말을 믿고 조회 시간에 건의문을 낭독했다가 2명이 해고된 사건이었다.

건의문 내용은 봉급 지급일의 확정, 구타 금지 등 인격적 대우, 여종업원에 대한 처우 개선, 법정 노동 시간 엄수 등이었다. 오순남은 이 문제를 『국제 신문』에 투고하였다. 박상도는 오순남을 만나 건의문에 들어 있지 않은 부당 노동 행위가 더 있음도 확인하였다. 결국 경찰과 근로 감독관이 개입하여 회사 측과 도시산업선교회 측이 협상을 벌였고, 두 사람의 복직, 각종 수당의 지급, 인격적 대우 등에 합의하였다.

이 사건이 성공적으로 해결되자 도시산업선교회[약칭 도산]의 존재가 부산 노동계에 널리 알려졌다. “노동청에 가도 안 되는 것은 도산에 가면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퇴직금, 산재 보상, 부당 해고 등의 문제를 가진 노동자들이 도시산업선교회를 찾아왔다. 도시산업선교회는 회사가 정당한 문제 해결을 거부하면 유인물을 배포하여 여론에 호소하였다. 유인물에는 회사의 제품, 사장의 이름과 전화번호 등이 있어 항의 전화를 해 줄 것을 호소하였다.

1977년 12월 도시산업선교회에 접수된 또 하나의 사례는 신창금속 문제였다. 신창금속은 임금 차등 인상, 수당 미지급 등의 문제로 노사 간에 갈등이 일어났다. 노동자들은 이 과정에서 노조 결성을 꾀하고 금속노조 부산지부와 결성 대회를 갖기로 했으나, 금속노조는 신창금속 노동자들이 도시산업선교회의 지원을 받는다는 이유로 분회 조직을 회피하였다. 도시산업선교회는 회사에 전화 걸기, 편지 쓰기 등을 호소하는 유인물을 배포하기로 했는데 그 직전에 경찰이 개입하여 협상이 벌어졌고 합의가 이루어졌다.

1978년 5월에는 인천의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이 부산으로 내려와, 섬유 노조 지부장 출신 김영태의 낙선 운동을 하다가 선거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김영태는 5월 18일에 치러진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에 출마했는데 김영태는 회사 측의 탄압을 받은 동일방직 노조를 사고 지부로 규정하여 탄압을 방조했고 해고 노동자의 명단을 전국 사업장에 돌려 재취업을 막았던 장본인이었다. 이 과정에서 박상도, 유동우, 박점룡 등이 경찰에 폭행을 당하고 끌려가서 박상도는 폭력 행사 및 공무 집행 방해죄로 구속되기도 하였다. 이후 부산의 정보기관에서 ‘도시산업선교회의 기업체 침투 상황’을 정기적으로 조사하기 시작했는데, 경찰서 정보과의 가장 중요한 업무 가운데 하나가 되었을 정도였다.

[의의와 평가]

1977년 4월에 설립된 부산 지역 도시산업선교회는 노동 집약적 산업이 밀집해 있고 노동 인권의 사각 지대에 놓여 있던 부산의 초기 노동 운동을 활성화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도시산업선교회는 노동 문제를 여론에 호소하는 방식을 통해 사회 문제로 부각시키고 부당 노동 행위를 자행한 기업주에게 압력을 가하는 방식으로 문제 해결을 추진하였다. 또한 노동 문제를 민주화 운동과 연계함으로써 민주화 운동의 범위를 확장하였다는 의의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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