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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5055
한자 伽倻聖堂夜學
영어의미역 Gaya Cathedral Night School
이칭/별칭 가야야학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문화·교육/교육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가야공원로 7[가야2동 157]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성홍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야학
설립 시기/일시 1980년연표보기 - 설립
해체 시기/일시 1981년연표보기 - 해체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80년 - 부산대학교 지하 서클로 강학 구성
최초 설립지 가야성당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가야공원로 7[가야동 157]지도보기

[정의]

1980년 부산직할시 부산진구 가야2동에 설립된 노동 야학.

[설립 목적]

가야성당야학은 1980년 노동자의 계급적 각성을 통하여 노동 운동의 현장 활동가를 육성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변천]

1979년 말 성안교회의 요청으로 야학을 정리하고 새 장소를 물색하던 중 한국가톨릭노동청년회[지오세] 활동을 하던 박주미의 도움으로 가야성당으로 야학을 옮겨왔다. ‘가야야학’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부산대학교 내 지하 서클의 회원을 중심으로 강학(講學)[야학의 교사]이 구성되었는데, 1980년 봄에 이 지하 서클이 민족사연구회라는 공개 서클로 전환하면서 민족사연구회의 신입생이 대거 강학으로 투입되었다. 이후 5·18 민주화 운동을 거치면서 선배 그룹이 빠지고 1학년, 2학년이 강학을 전담하게 되었다.

1981년 5월 강학 이성홍 등이 부산대학교 학내에서 유인물을 배포하고 시위를 벌이다가 발각되었는데, 조사 과정에서 가야성당야학의 등사기를 사용한 것이 드러나 문을 닫게 되었다. 가야성당야학이 정리되면서 이후 학생[노동자]들은 지오세[Jeunesse Ouvriere Chretienne, 가톨릭노동청년회] 활동을 하거나 졸업생 모임을 꾸려가기도 하였다. 남은 강학들은 뒤에 사상성당야학으로 옮겨가기도 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가야성당야학의 수업 과목과 내용은 생활 야학의 형태를 취하였다. 국어, 작문, 사회 등 의식화 학습에 용이한 과목에 중점을 두어 수업하였다. 교재는 잉크식 등사기[이를 ‘가리방’이라 하였다.]를 사용하여 일일이 만들어 썼으며, 수업 시간에 관계없이 거의 모든 강학들이 수업에 참관하는 등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모습을 보였다. 거의 노동자들과 연배도 비슷하여 친밀한 유대 관계를 형성하였으며 여름에는 1박 2일로 학생[노동자]의 고향집에 수련회를 가기도 하였다. 실질적으로 수업 내용이나 사회적 각성보다 이러한 인간적 관계를 통하여 운영되었는데, 모두 2기가 모집되었으며 학생들의 작문을 모아 문집을 내기도 하였다.

[의의와 평가]

가야성당야학은 부산 지역의 노동 야학 가운데 초기의 사례로서, 초기 노동 야학의 실태를 알 수 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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