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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총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4115
한자 倭塚碑
영어의미역 Monument for Japanese tombs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비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양흥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원소재지 부산광역시 동구 수정동

[정의]

부산광역시 동구 수정동에 있던 조선 후기 일본인 무덤 구역임을 알리는 비.

[개설]

왜총비(倭塚碑)는 「1872 군현 지도 두모진 지도」에만 보이지만, 역사적으로는 조선 후기 조선과 일본 양국에서 매우 중요한 사실을 가리킨다. 1607년(선조 40) 두모포 왜관이 설치된 후 대일 외교와 무역이 안정화되었다. 왜관에는 일본 사절은 물론 상인 등도 많이 찾아왔는데, 왜관에 체류하다가 사망하는 일본인이 생겼다.

1612년(광해군 4) 일본인 격군(格軍)[뱃사공]이 사망하였는데 이를 왜관 뒷산에 묻었다. 이를 계기로 왜관 뒷산에는 일본인 무덤 구역이 조성되었다. 왜관이 초량으로 이전한 후 이곳에 묻힌 사람들의 후손이 참배를 목적으로 불법적으로 왜관을 나오는 일이 많았다. 당시 동래 부사이던 소두산(蘇斗山)은 이 일을 조정에 알렸고, 1683년(숙종 9) 봄가을 사일(社日)[입춘과 입추 후 다섯 번째 무일(戊日)]과 백종절(百種節)에 참배하는 것이 허락되었다.

일본인 소천차랑우위문(小川次郞右衛門)이 지은 『우진토상(愚塵吐想)』이란 책에는 1806~1807년경에 두모포 왜관 뒷산에는 24기, 개운포에 3기의 묘소가 남아 있었다고 한다. 초량 왜관에 체류하다 사망한 일본인은 왜관 뒤 복병산(伏兵山)에 묻혔다. 바로 이러한 일본인 무덤을 알려 주는 것이 왜총비이었지만, 그 건립 연대는 알 수 없다.

[위치]

왜총비부산광역시 동구 수정동 일대에 있었다.

[의의와 평가]

왜총비는 지도에서 비석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으나, 왜관이 두모포에서 초량으로 옮겨지면서 일본인 묘소도 이전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또한 왜관이 대일 외교와 무역을 수행하는 공공장소뿐 아니라 일본인의 생활공간으로서 자리하였음을 보여 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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