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해행총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4017
한자 海行摠載
영어음역 Haehaeng-chongjae
영어의미역 Travelogue of Japan in Goryeo and Joseon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고려/고려,조선/조선
집필자 한태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도서
저자 조엄 외
권책 28책
행자 10행 28자
규격 27.8×19.2㎝
어미 상이엽화문어미(上二葉花紋魚尾)
권수제 해행총재(海行摠載)
판심제 해행총재(海行摠載)
저술 시기/일시 1377~1764년연표보기 - 저술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14~1916년 - 조선고서간행회에서 『조선 군서 대계』로 영인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74~1979년연표보기 - 민족문화추진회에서 『국역 해행총재』 간행
소장처 국립중앙도서관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대로 201

[정의]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사행(使行)이나 포로, 또는 표류 등으로 부산에서 출발하여 일본을 다녀온 이들이 남긴 기록 총서.

[저자]

조엄(趙曮)의 『해사 일기(海槎日記)』와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등에는 『해행총재(海行摠載)』홍계희(洪啓禧)가 엮었다고 적고 있다. 따라서 1차 저자는 홍계희이고, 이것을 번등(翻謄)하여 61편으로 만든 뒤 『식파록(息波錄)』이라 명명한 서명응(徐命膺)이 2차 저자이며, 『식파록』에 자신의 『해사 일기』를 포함시켜 성대중(成大中)과 함께 집대성한 뒤 이를 다시 『해행총재』라고 한 조엄이 3차 저자라 할 수 있다.

홍계희[1703~1771]의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순보(純甫), 호는 담와(澹窩)이다. 지금의 김제시 만경읍 몽산리에서 참판을 지낸 홍우전(洪禹傳)과 대사헌을 지낸 이상(李翔)의 딸 사이에 태어났다. 『사례편람(四禮便覽)』을 지은 이재(李縡)의 문인으로, 1737년(영조 13) 별시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정언이 되고, 우의정 조현명(趙顯命)의 천거로 교리로 특진되었다. 북도 감진어사(北道監賑御史), 부사과(副司果) 등을 거쳐 1748년 통신사 정사로 뽑혀 일본에 다녀왔다. 이후 형조 참판, 충청도 관찰사, 병조 판서, 이조 판서, 예문관 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특히 1762년 경기도 관찰사로 있을 때 사도 세자(思悼世子)의 잘못을 고변하여 세자가 죽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사후 문간공(文簡公)이란 시호가 주어졌지만 정조 즉위 후 두 손자가 정조 시해 미수 사건에 결부되어 두 아들 및 일가가 처형당하자 관직이 추탈되고 역적의 명부에 이름을 올렸다. 저서로 『삼운성휘(三韻聲彙)』·『준천사실(濬川事實)』·『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 등이 있다.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일산리 산2-1번지에 있다.

서명응[1716-1787]의 본관은 대구(大邱), 자는 군수(君受), 호는 보만재(保晩齋)·담옹(澹翁)이다. 서울 중부 경행방(慶幸坊)에서 이조 판서를 지낸 서종옥(徐宗玉)과 이집(李集)의 딸 사이에 태어났다. 1754년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부제학(副提學), 이조 판서를 거친 뒤, 이듬해 서장관(書狀官)의 신분으로 청나라 연경(燕京)에 다녀왔다. 그 뒤 승지·대사간·대제학을 거쳐 봉조하(奉朝賀)에 이르렀다.

박학강기(博學强記)에다 역학(易學)에 정통한 실학자로 북학파의 시조로 추앙되며, 이용후생(利用厚生)의 학문 정신은 아들 서호수(徐浩修), 손자 서유구(徐有榘)에게로 가학의 전통이 이어졌다. 『역학 계몽 집전(易學啓蒙集箋)』과 같은 역서와, 『기자 외기(箕子外紀)』와 같은 역사서, 『고사 신서(攷事新書)』와 같은 백과사전류, 그리고 『대악전보(大樂前譜)』·『대악후보(大樂後譜)』와 같은 음악서 등의 편찬에 주도적 역할을 했고, 저술로는 자신의 시문집인 『보만재집(保晩齋集)』을 비롯하여 『보만재 총서(保晩齋叢書)』·『보만재 잉간(保晩齋剩簡)』 등이 있다. 시호는 문정(文靖)으로 묘소는 경기도 장단군(長湍郡) 금릉리(金陵里)에 있다.

조엄[1719-1777]의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명서(明瑞), 호는 영호(永湖)이다. 이조 판서를 지낸 조상경(趙商絅)과 이정태(李廷泰)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1738년 생원시에 합격하고, 1752년 정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정언(正言), 동래 부사, 충청도 암행어사, 경상 관찰사를 지냈다. 1763년 통신사 정사(正使)로 약 460여 명의 사행원을 이끌고 일본을 다녀왔는데, 이는 에도[江戶]까지 간 마지막 통신사였다.

일본을 다녀온 뒤 대사간, 공조 판서, 이조 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평안도 관찰사 때 탐학(貪虐)하였다는 무고를 받아 파직되었다가 후에 혐의가 풀렸지만 1777년(정조 1) 다시 홍국영(洪國榮) 일파의 무고로 유배지인 김해(金海)에서 병사하였다. 문장에 능하고 경사(經史)에 밝았으며, 특히 세곡 납부에 따른 종래의 민폐를 시정하는 등 민생 문제 해결에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1814년(순조 14) 좌찬성에 추증되었는데 시호는 문익(文益)이다. 저서로 통신사 사행록인 『해사 일기』가 전하고 있다. 묘소는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간현리 산69-12번지에 있는데, 신도비는 영의정 남공철(南公轍)이 짓고 광주 유수(廣州留守) 김이재(金履載)가 글씨를 썼으며, 이조 판서 김재창(金在昌)이 새겼다.

[편찬/간행 경위]

1763년 통신 사행에 정사로 참여한 조엄의 『해사 일기』 10월 6일자 기록에는 통신사 사행원들이 남긴 기록을 1748년 통신사 정사인 홍계희가 수집하여 『해행총재』라고 이름하였고, 부제학 서명응이 이를 모두 61편으로 재정리하여 제목을 『식파록』이라 바꾼 후 조엄에게 보내준 것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조엄은 『식파록』에 자신의 『해사일기』를 첨가해 다시 『해행총재』라 이름 붙였다. 『해행총재』를 편찬한 주목적은 통신사의 일본 사행록을 수집·정리함으로써 앞으로의 통신사 일행이 참고할 수 있는 자료로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해행총재』가 활자로 간행된 것은 조엄『해행총재』 가운데 그때까지 남아 있던 것을 모아 1914~1916년에 조선고서간행회(朝鮮古書刊行會)에서 영인한 『조선 군서 대계(朝鮮群書大系)』부터이다. 『해행총재』는 이 책의 속속(續續)편에 『해동명신록(海東名臣錄)』·『동문선(東文選)』 등과 함께 제3집에서 6집까지 4책으로 수록되어 있는데, 민족문화추진회에서는 이를 저본(底本)으로 하여 1974~1979년에 『국역 해행총재』 12권을 발간하였다.

[형태/서지]

조선고서간행회의 『해행총재』 저본은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된 사주 단변(四周單邊) 반곽(半郭) 21.5×15.7㎝, 10행 28자 주쌍행(注雙行), 상 이엽화문 어미(上二葉花紋魚尾) 27.8×19.2㎝의 필사본이다.

[구성/내용]

조엄『해행총재』는 모두 28종의 기록을 담고 있다. 홍계희의 『전후 사행 비고(前後使行備考)』, 정몽주(鄭夢周)의 『정포은 봉사 시작(鄭圃隱奉使時作)』, 신숙주(申叔舟)의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 김성일(金誠一)『해사록(海槎錄)』, 김철우(金哲佑)의 『동사록(東槎錄)』, 강항(姜沆)의 『간양록(看羊錄)』, 경섬(慶暹)『해사록』, 오윤겸(吳允謙)『동사록』, 이경직(李景稷)의 『부상록(扶桑錄)』, 강홍중(姜弘重)『동사록』, 임광(任絖)의 『병자 일본 일기(丙子日本日記)』, 김세렴(金世濂)『해사록』, 황호(黃㦿)『동사록』, 조경(趙絅)의 『동사록』, 신유(申濡)의 『해사록』, 작자 미상의 『계미 동사 일기(癸未東槎日記)』, 남용익(南龍翼)『부상록』, 홍우재(洪禹載)『동사록』, 김지남(金指南)『동사록』, 이방언(李邦彥)의 『동사록』, 김현문(金顯門)의 『동사록』, 홍치중(洪致中)의 『해사록』, 황선(黃璿)의 『동사록』, 신유한(申維翰)『해유록(海遊錄)』, 정후교(鄭后僑)의 『부상록』, 남태기(南泰耆)의 『사상기(槎上記)』, 역관들의 『초본 사상기(草本槎上記)』, 조엄의 『해사 일기』·『조제곡 일기(趙濟谷日記)』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조선고서간행회에서 펴낸 『해행총재』에는 김철우·이방언·김현문·홍치중·황선·정후교·남태기·역관 등의 사행록 8종이 빠지고 표류기(漂流記)인 이지항(李志恒)의 『표주록(漂舟錄)』이 추가로 들어갔다. 그리고 『국역 해행총재』에는 조선고서간행회 본 『해행총재』를 그대로 국역하되 송희경(宋希璟)『노송당 일본행록(老松堂日本行錄)』, 황신(黃愼)의 『일본 왕환 일기(日本往還日記)』, 정희득(鄭希得)의 『월봉해상록(月峰海上錄)』, 노인(魯認)의 『금계 일기(錦溪日記)』, 임수간(任守幹)의 『동사 일기(東槎日記)』, 조명채(曺命采)의 『봉사 일본시 문견록(奉使日本時聞見錄)』, 유상필(柳相弼)『동사록』, 김기수(金綺秀)의 『일동기유(日東記游)』, 이헌영의 『일사집략(日槎集略)』, 박영효(朴泳孝)의 『사화기략(使和記略)』, 박대양(朴戴陽)의 『동사 만록(東槎漫錄)』 등 11종이 추가로 국역·수록되어 있다. 추가본은 통신사 사행록 5종 외에 임진왜란 포로의 체험기와 개항 이후 수신사(修信使) 등의 일본 사행록이 포함된 것이 특징이다.

[의의와 평가]

『해행총재』는 사행원·피로인(被虜人)·표류민(漂流民) 등 일본을 직접 체험한 이들의 견문과 감상을 토대로 하고 있어 구체적인 데다, 당시 조선과 일본의 외교 상황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어 한일 관계사를 재조명하는 데 있어 귀중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