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1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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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海游錄 |
영어음역 | Haeyurok |
영어의미역 | 1719 Joseon Writer’s Travelogue of Japan |
이칭/별칭 | 『해사동유록(海槎東遊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윤상기 |
[정의]
1719년 부산에서 출발한 기해 사행(己亥使行) 당시 신유한(申維翰)이 쓴 사행록.
[저자]
신유한은 조선 후기의 문신·문장가로서 본관은 영해(寧海)이며, 자는 주백(周伯), 호는 청천(靑泉)·가야초수(伽倻樵叟)이다.
1681년(숙종 7)에 태어났으며, 1705년(숙종 31) 진사시에 합격하고, 1713년(숙종 39) 증광 문과(增廣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19년(숙종 45)에 제술관(製述官)으로서 통신사 홍치중(洪致中)을 따라 일본에 다녀왔다. 이때 그의 글을 청하는 이들로 거리가 메이고 문이 막힐 지경이었는데, 앉은자리에서 수백 편을 일필휘지해 일본 문인들을 찬탄케 했다. 승문원 부정(承文院副正), 봉상시 첨정(奉常寺僉正), 연천 현감(漣川縣監), 부안 현감(扶安縣監) 등을 지낸 후 늙어서는 후학을 가르치다가 1752년(영조 28)에 세상을 떠났다. 문장으로 이름이 났으며, 특히 시에 걸작이 많고 사(詞)에도 능하였다. 최성대(崔成大)·이병연(李秉淵) 등과 교유하였다. 저서에 『청천집(靑泉集)』·『분충서난록(奮忠紓難錄)』·『해유록(海遊錄)』 등이 있다.
[편찬/간행 경위]
기해 사행은 일본에 도쿠가와 요시무네[源吉宗]가 새로운 관백(關白)으로 즉위한 것을 축하하기 위해 홍치중을 정사로 하여 1719년 4월부터 이듬해 1월에 걸쳐 이루어진 사행이다. 이때 신유한이 제술관으로 참여하여, 1719년 4월 11일 도성을 출발하여 이듬해 1월 24일 복명할 때까지 보고 들은 것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하였다. 『해유록』은 『해행총재(海行摠載)』 중에 제3편과 『청천선생속집(靑泉先生續集)』 권3~6에도 수록되어 있다.
[형태/서지]
필사본이 여러 종류 전해오고 있다. 그중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본은 3권 1책으로 된 필사본으로, 1938년에 전사(轉寫)한 것으로 보인다. 책의 크기는 28.0×19.5㎝이다.
[구성/내용]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본은 1719년 4월부터 1720년 1월까지 10개월간의 사행 일기를 3권으로 나누어서 기록하였다.
권1에서는 1718년(숙종 44) 정월에 일본이 대마도주(對馬島主)를 통하여 새로운 관백의 즉위를 알려오자 조정에서 통신사의 파견 및 임명을 논의하는 과정을 기술하였고‚ 이어서 1719년 4월 11일 도성을 출발하여 부산에서 바다를 건너고 6월 27일 쓰시마를 거쳐 9월 3일 나니와강[浪華江] 하구에 도착하기까지 거쳐 갔던 지역의 지리·인습·풍속·제도·초목 등과 그 간에 행하였던 망궐례(望闕禮) 등의 의식 과정 등을 기록하였다. 말미에는 1939년에 전사하면서 필사자가 첨가한 것으로 보이는 「청천시집(靑泉詩集)」이 첨부되어 있다.
권2에서는 9월 4일부터 11월 14일까지의 일본 체류 기간 중의 일을 기록하였는데‚ 사행길에 거쳐 간 일본 내륙의 여러 지역과 문물에 대한 소개‚ 일본 관원들의 통신사에 대한 접대 모습‚ 일본 관백에게 국서를 전하고 회답을 받는 모습‚ 일본의 학자·승려들과 필담한 내용 및 그들에게 준 시문 등을 수록하였다. 권3에서는 11월 15일 일본을 출발해서 이듬해 1월 24일 도성에 도착하여 복명하기까지의 여정을 기록하였다.
[의의와 평가]
18세기 전반 통신 사행의 여정 및 일본의 정치·문화 등은 물론이고‚ 신유한의 시문을 살피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특히 이 책은 조선 통신 사행에 대한 일본 기행문 중에서 가장 우수한 문학적 작품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