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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의 지역 교류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4011
한자 朝鮮時代-地域交流
영어의미역 Regional Trade of the Joseon Dynasty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변광석

[정의]

조선 시대 동래를 중심으로 경상도 인근 고을과 이루어진 지역 간의 물화 교류와 교통.

[내용]

조선 시대 지방에서의 물자 교역은 장시(場市)나 포구(浦口)에서 이루어졌다. 이 교역 공간은 18세기 이후에 크게 발달하면서 오일장으로 체계화되어 전국에 천여 개나 되었다. 이무렵 부산 지역의 오일장으로는 부내장(府內場), 좌수영장(左水營場), 부산장(釜山場), 하단장(下端場), 독지장(禿旨場) 등이 있었다. 장시 간의 거리는 대체로 30~40리 정도였으며, 부보상 같은 행상들이 교역을 주로 담당하였다. 부산권에서는 지리적으로 인접하고 교통권이 편리한 기장·양산·김해 등의 인근 장시까지 행상들이 주로 왕래하며 교역하였다. 교역 물품은 주로 곡물·직물·어물·피물·약재 등 다양하였다.

낙동강의 수운과 연해 지역의 해운이 발달하여 부산포·하단포·구포(龜浦) 등에서 집하된 어물과 소금은 구포의 감동진(甘同津)에서 출발하여 수운을 통하여 삼랑진[밀양]~박진[의령]~가무창·율지[초계]~세암[현풍]~사문진[대구] 등의 내륙으로, 또 해운을 통하여 마산포[창원]~문선포·가산포[진주] 등의 포구까지 원거리 교역이 이루어졌다. 특히 김해 명지도(鳴旨島)에서 생산된 소금은 유명하였으며, 현재의 서낙동강이 원래 낙동강 하류의 본류였을 때에는 김해의 칠성포(七星浦)가 유통의 중심지였다. 이들 소금은 인근 양산과 기장에도 팔려 나갔다. 19세기에는 객주(客主)·여각(旅閣)처럼 집산지에서 상품의 위탁 판매, 매매 주선, 유통과 관련된 창고업·화물 수송업·금융업 등을 수행하는 중간 상인들이 크게 활동하였다.

그리고 조선 후기 동래부(東萊府)와 기장현(機張縣) 및 양산군·김해부 관련 지도에 의하면 동래~기장~양산~김해로 연결되는 지역 교통로를 알 수 있다. 가장 큰 길은 다음과 같다. 동래읍에서 쌍교(雙橋)를 지나서, 좌수영에서는 우현(牛峴)을 지나서 각각 기장읍으로 간선로가 있었으며, 또 기장읍에서 쌍교를 지나 영천(榮川)을 경유하여 양산읍으로 교통로가 연결되었다. 동래읍에서는 소산역(蘇山驛)을 지나 양산으로 연결되었고, 또 기비현(其比峴)을 지나거나 옛 동평(東平)을 지나서 모두 감동진을 경유하여 낙동강을 건너 김해읍으로 교통로가 연결되었다. 지역 간 거리는 동래부의 소산역을 기준으로 양산 20리, 기장 30리, 김해 35리 정도였다.

결국 동래와 기장 지역의 물화 유통은 인근 지역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발달하였다. 나아가 조선 시대 동래는 낙동강 수운을 통하여 경상도 내륙과 한양으로 통하는 남한강의 물길로 연결되고, 남해안 해운을 통하여 전라도의 포구로 연결됨으로써 이른바 물화 교류와 교통의 중개지이자 거점 역할을 담당한 점이 특징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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