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39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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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宮崎又治郞 |
영어음역 | miyazaki matashichirou |
이칭/별칭 | 궁기우치랑(宮崎又治郞)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중구 동광동 2가 11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전성현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부산세관장과 부산 부윤을 역임한 일본인 관료.
[활동 사항]
미야자키 마타시치로[宮崎又治郞]는 일본 미에 현 영녹군 정전천촌[三重縣 鈴鹿郡 井田川村]에서 태어났다. 출생 연도와 관련해서는 1880년(고종 17)과 1883년(고종 20) 두 개의 연도로 알려져 있으며, 출생 일자는 4월 8일이다. 1908년(순종 2) 7월 동경제국대학 법학대학 정치과를 졸업하고 1909년(순종 3) 문관 고등 시험에 합격한 후 1910년 10월 조선으로 건너와 조선총독부 서무과 속(屬)으로 부임하였다.
미야자키 마타시치로는 1911년 8월 조선총독부 지방과 속, 11월 조선총독부 시보(試補)를 거쳐 1912년 근무지를 옮겨 전라남도 사무관이 되었다. 1915년 강원도 사무관이 되어 재무부장으로 전임하는 동시에 조선총독부 직속 기관인 지방토지조사위원회 강원도지방토지조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1919년까지 강원도에서 도 사무관으로 근무하였다. 1922년 다시 원산세관장으로 영전했고 조선총독부 직속 기관인 보통시험위원회 원산세관 위원[임시]으로 활동하였다.
1925년 부산세관장으로 전임하는 동시에 보통시험위원회 부산세관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부산세관장 시절인 1928년에는 조선을 대표하여 대장성(大藏省) 세관장 회의에 참석하러 일본에 갔다가 일왕을 만날 기회도 얻었다. 이후 1929년 11월까지 부산세관장으로 활동하였다. 한편, 1925년부터 1929년까지 부산상공회의소 특별평의원으로도 임명되어 일본인 중심의 경제 단체인 부산상공회의소를 위해 자문 활동에 종사하였다.
미야자키 마타시치로는 1929년 11월 당시 부산 부윤인 구와바라 이치로[桑原一郞]가 대구 부윤으로 전근하자 이를 이어 부산 부윤에 임명되었고, 1931년 9월 22일까지 근무하였다. 부산 부윤 시기 새로운 사업보다는 전임 부윤이 추진하던 ‘대부산 건설’ 사업을 연속하여 완성하고자 힘썼다. 대표적으로 연안 무역 시설 시공, 수도 확장 및 하수도 공사, 부산진 및 남항 매축 공사 등을 이어서 추진하거나 일부 완성하였다. 부산 부윤에서 물러난 이후 칙임관 대우로 임면되었다.
[상훈과 추모]
1912년 최초 종7위에서 1931년 부산 부윤을 그만둘 때 칙임관 대우, 정5위 훈5등으로 승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