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35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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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肝谷驛 |
영어의미역 | Gangok Stati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고려/고려,조선/조선 |
집필자 | 한정훈 |
[정의]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 부산 동래에서 울주로 가는 관문에 해당하는 역참.
[관련 기록]
『고려사(高麗史)』 권82, 병2 참역에 “금주도는 31개소를 관할한다. …… 아등량·기장역, 굴화·간곡[울주], 덕천[언양][金州道掌三十一 …… 阿等良·機長驛·屈火·肝谷(蔚州)·德川(彦陽)]”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울산부 읍지(蔚山府邑誌)』[1832] 역원에는 “간곡역(肝谷驛)은 울산 도호부 서쪽 39리에 있으며, 동쪽으로 굴화역과 25리 떨어져 있다[肝谷驛 在府西三十九里 東距堀火驛二十五里]”라고 되어 있다.
[내용]
간곡역은 조선 시대 울산 도호부의 7개 간선 도로 중 울산부 남문~삼탄~청량면[또는 태화강 도하~무거동~청량면]~웅촌면 간곡역~웅상읍 서창을 경유하여 동래로 이어지는 노선상에 위치하였다. 그 노선상에는 기장현의 아월역, 동래 도호부의 소산역·휴산역이 차례로 위치하였다. 지금의 울산광역시 울주군 웅촌면 웅촌중학교 남쪽 골짜기에 해당한다. 조선 후기 읍지 기록에 따르면, 간곡역에는 대마(大馬) 1필, 중마(中馬) 2필, 복마(卜馬) 8필, 역노(驛奴) 15명이 배속된 그다지 크지 않은 역이었다.
간곡역은 여타 역에 비해 시설이 간소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러한 간곡역의 모습은 이덕형(李德馨)[1561~1613]의 『한음 선생 문고(漢蔭先生文稿)』 권2 「울산 가는 도중을 회상하며」라는 시(詩)에 부분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여름날 혼자 간곡역에 왔는데, 풀이 무성한 산속의 지름길의 인적이 드물고……”라고 하여 심곡(深谷)에 간곡역이 위치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하지만 규모가 간소한 역이라고 하여 중요성마저 낮은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상정(李象靖)[1711~1781]의 『대산 선생 문집(大山先生文集)』 권2 「남쪽을 유람하며 기록하다」라는 시에서는 “기장의 새로 지은 역에서 쉬고, 저녁에 울산 간곡역에서 잤다. 19일에 울산에 도착하여 [울산 읍성] 강해루에 올랐다”라는 내용이 있다. 이를 통해 해안에 위치한 기장에서도 해안 도로를 따라가지 않고 굳이 내륙에 위치한 웅촌의 간곡역에 와서 숙박하고 울산으로 갔다는 것은 울산~부산을 잇는 길 중에 간곡역이 중요한 역이었음을 말해 준다.
[변천]
고대에는 울주군 웅촌면 곡천리 일대에 간곡역이 위치한 역참 시설이 확인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일대는 경주~울산 범서읍[굴화리]~울산 웅촌면~양산 웅상읍~장토지야[기장군 정관읍 월평리]~동래 노포동 경로는 신라의 전통적인 왕경(王京) 동남 방면의 주요 교통로의 일부이다. 교통로상의 중요성을 반영하여 고려 시대에는 금주도 소속, 조선 시대에는 황산도 소속으로 간곡역은 1,000년 가까이 존속하면서 부산~울산 노선의 중간 기착지 기능을 하였다.
[의의와 평가]
간곡역은 신라 이래의 부산~울산 간 옛길을 복원하는 데 중요한 역참 시설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