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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273
영어음역 Sin Changho
이칭/별칭 을숙도 화가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종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미술가
성별
대표경력 부산 미술 대전 심사 위원
출생 시기/일시 1928년연표보기 -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89~1990년 - 『국제 신문』 연재소설에 삽화 게재
활동 시기/일시 2000년 8월 - 개인전 개최
몰년 시기/일시 2003년 5월 13일연표보기 -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05년 9월 27일~10월 2일 - 추모전 개최, 작품집 발간
추모 시기/일시 2006년 - ‘화가 신창호 추모비’ 건립
출생지 신창호 출생지 - 대구광역시
거주|이주지 신창호 이주지 - 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
학교|수학지 경북대학교 - 대구광역시 북구 대학로 80
활동지 국제신문사 - 부산광역시 중구지도보기
묘소 신창호 묘소 -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면

[정의]

현대 부산에서 활동한 풍경화가.

[활동 사항]

신창호는 1928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경북대학교 경제학과를 중퇴하고 독학으로 서양화를 공부하였다. 1960년대 초 삶의 터전을 부산으로 옮기면서 중구 중앙동에 ‘신화백 아틀리에’를 마련한 뒤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부산 화단에서 신창호전혁림(全赫林), 추연근, 김종식(金種植), 임호(林湖), 양달석(梁澾錫) 등과 함께 구상화풍을 일으켰다. 1989~1990년 사실적인 묘사와 선이 고운 운필로 『국제 신문』의 중편 소설 릴레이의 삽화가로 활동하였고, 여러 기획전과 단체전에 초대받았으며, 부산 미술 대전의 심사 위원을 지내기도 하였다.

산과 들녘의 청명한 대기와 강 바다의 투명한 물빛을 소재로 하는 풍경화를 주로 그려 온 신창호는 “삶이 끝나는 날까지 배우고 익혀야 한다”는 예술관으로 일관하였다. 특히 하단에 대한 애착이 각별하여 풍경화 가운데 다수가 하단과 을숙도를 배경으로 하였고, 이 때문에 ‘을숙도 화가’로 불리기도 하였다. 틈만 나면 야외로 나가 사생을 하며 붓을 들던 신창호는 고희를 넘긴 2000년 8월에도 개인전을 열어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하였다. 대외 활동보다는 묵묵히 작품 활동에 매진하여, 한 사람의 작가로서 이름을 알리는 길을 택하였던 것이다.

신창호는 한편 후진 양성에도 땀을 쏟아 상당수의 중진 작가를 양성하기도 하였다. 대표적인 제자로는 부산대학교 이민한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박재동 교수와 박세형 교수, 화가 정광화 등이 있다. 2003년 5월 13일 오전 8시 향년 75세를 일기로 지병으로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산장길」, 「강촌」, 「풍경」 등 많은 작품이 있으나 전모를 알 수 없다.

[묘소]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면 선영에 묻혔다.

[상훈과 추모]

2005년 신창호의 제자들이 중심이 되어 ‘고신창호화백추모전준비위원회’를 결성하여, 9월 27일~10월 2일 추모전을 개최하고 신창호 작품집을 발간하였다. 2006년 ‘고신창호추모사업추진위원회’[위원장 정광화]가 부산광역시 서구 서대신동 꽃마을 수목원[구덕 문화 공원] 입구에 ‘화가 신창호 추모비’를 설치하였다. 추모비의 디자인은 울산대학교 정욱장 교수가 맡았다.

높이 3.8m 크기에 산을 닮은 형상을 한 추모비는 한가운데에 검은색 오석을 배치하였고 청동으로 만든 신창호의 두상을 돌 속에 집어넣었다. 특히 청동 두상은 조각가의 길로 막 접어든 신창호 화백의 손자 신종훈이 맡았다. 자연 풍경을 사랑한 고인을 기려 시인 박문하(朴文夏)의 「을숙도에 가면」이란 시를 새겨 넣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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