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32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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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三節祠祇謁錄 |
영어의미역 | Records of Samjeolsa Shrin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손숙경 |
[정의]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송동에 있는 반송삼절사 창건시 기알한 사람들의 명단을 기록한 책.
[개설]
조선 후기 동래에는 관아에서 제수를 지급하는 사우(祠宇)로 반송삼절사와 충렬사 등이 있었다. 반송삼절사는 양지(梁誌)·양조한(梁潮漢)·양통한(梁通漢) 등 임진왜란 때 순절한 남원 양씨 일가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 지내는 곳이다. 임진왜란 당시 양지는 경기도 광주 군수로 성을 지키다가 순국하였고, 양조한은 동래성에서, 그의 아우인 양통한은 곽재우(郭再祐)와 함께 화왕산에서 의병 활동을 하다가 순절하였다.
이들 남원 양씨 3인의 위패를 봉안한 반송삼절사는 1839년 당시 동래부 사림(士林)의 제의로 지금의 해운대구 반송동에 건립하여 반송삼절사라 이름하였다. 다음해에 사림의 요청으로 감사가 계(啓)를 올려 일문삼절(一門三節)의 합사(合祀)를 중앙 정부로부터 윤허 받았으며, 제수 등 제반 비용은 동래부에서 제공하였다. 관리와 행사는 향내 사림이 주관하였다.
1840년 사우의 강당을 증축할 때는 경상좌수영의 금양송추(禁養松楸)를 벌채, 사용하라는 절도사의 허락을 받아 완공하였다. 이 당시 동래부의 각 기관과 동중의 찬조금이 모두 39냥 3전이었고, 같은 해 4월 22일에 준공하였다. 1851년에 사위답(祠位畓)의 조세는 서원답의 관례에 의해 감면받았다. 동래에는 향경재 등 몇 개의 사우가 있는데 그중 가장 규모가 큰 것이 바로 반송삼절사이다.
[편찬/간행 경위]
『삼절사 기알록(三節祠祇謁錄)』은 반송삼절사 창건 당시인 1839년부터 1868년까지 배알한 사람들의 명단을 기록해 놓은 책이다. 반송삼절사 창건시 봉안할 때부터 이후 1868년까지 반송삼절사에 배알한 사람들의 명단을 제례의 형식에 따라 기록한 것이다.
[형태/서지]
『삼절사 기알록』은 필사본 1책으로, 겉표지를 포함해서 모두 12장이다. 반송삼절사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삼절사 기알록』에는 모두 99명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1839년부터 1868년까지 약 30년간에 걸쳐 작성되었으므로 각 시기별로 이름을 기재한 형태가 조금씩 차이가 있다. 배알한 사람들의 본관과 이름만 기록된 경우도 있고, 생년과 자(字)가 기록되어 있는 사람도 있다. 또 동래 지역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방문한 경우에는 이름 아래에 그 지역을 기록해 놓고 있는데 양산, 언양, 울산, 기장 등 대부분 동래 인근 지역의 양반들이다.
[의의와 평가]
조선 후기 반송삼절사 정도의 소규모 사우가 전국에 걸쳐 매우 많이 건립되었으나 반송삼절사와 같이 관련 자료가 충실히 남아 있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러한 맥락에서 『삼절사 기알록』은 값진 자료라고 할 수 있다. 기록된 사람들의 명단을 통하여 반송삼절사에 관여한 동래 지역 양반들의 존재 형태를 파악할 수 있다. 또한 동래 지역 양반들과 인근 경상도 지역 양반들과의 관련성 및 제례시의 모습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자료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