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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104
영어의미역 Shell Mound
이칭/별칭 패총,조개무지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선사/석기
집필자 하인수

[정의]

부산 지역 신석기 시대인들의 종합적인 생활 유적.

[개설]

조개더미는 마치 무덤처럼 쌓였다 해서 조개 무덤 혹은 조개무지, 패총(貝塚)이라고 부른다. 부산 지역의 조개더미에는 많은 조개껍질이 토양을 알칼리성으로 만들기 때문에 조개뿐만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식용으로 이용하였던 동물이나 물고기 뼈 등과 같이 아주 작은 뼈도 현재까지 잘 보존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조개더미에는 파손된 토기, 석기, 골각기, 토제품 등의 생활 및 생산 도구 등도 포함되어 있다. 이밖에 무덤, 주거지, 화덕 시설이 발견되기도 한다.

따라서 조개더미는 다른 유적에 비해 선사 및 고대의 자연 환경과 생업 활동의 내용을 직접 보여 주는 다종다양한 자료들이 다량으로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고고학적인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선사 시대의 사회와 문화, 인간 활동을 시간적으로 복원할 수 있는 층위학적 자료도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조개더미는 선사 시대 사람들이 남긴 쓰레기장인 동시에 과거 생활과 문화 정보가 종합적으로 포함되어 있는 생활 유적이라고 할 수 있다.

[조개더미의 출현]

인류가 조개나 어류를 식량 자원으로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30만 년 전 프랑스의 구석기 유적인 테라아미타 유적에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해양 수산 자원을 생계에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그 흔적을 남기기 시작한 시기는 지금부터 1만 년 전후로 추정되며, 이 무렵부터 고고학적으로 의미 있는 조개더미가 출현하기 시작하였다.

조개더미의 출현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전 지구적인 온난화로 자연 환경의 변화와 해수면 상승 등으로 생태 환경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이러한 자연 환경 변화에 적응한 신석기 사람들은 식량 자원이 풍부한 바닷가에 거주하고 해양 자원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게 되는데, 그 산물이 조개더미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조개더미는 인류가 완신세(完新世)[홍적세(洪積世)의 대빙하가 녹은 다음의 후빙하 시대(後氷河時代)로, 약 1만 년 전부터 현대까지를 말한다.]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남긴 대표적인 유적의 하나이다. 인간이 처음으로 바다를 삶의 공간과 생업 무대로 활용하였음을 직접적으로 보여 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조개더미]

우리나라에서 조개더미가 출현하고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하는 시기는 신석기 시대부터이며, 이후 청동기 시대를 거쳐 삼한 및 삼국 시대까지 지속적으로 만들어 졌다. 물론 극히 일부이기는 하지만, 지역적으로 고려 및 조선 시대까지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 현재까지의 고고학적 자료로 본다면 가장 이른 시기의 조개더미는 남해안 지역의 부산 동삼동 패총 등에서 확인되며, 그 시기는 기원전 6,000년 무렵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앞으로 발굴 사례가 증가하면 그 시기가 더 올라갈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판단된다.

신석기 시대는 조개더미의 시대라고 할 정도로 전국의 해안 지역에 많은 조개더미가 분포한다. 조개더미에는 당시에 바다를 무대로 생활하였던 신석기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뿐만 아니라 자연 환경을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유물과 정보가 포함되어 있다. 한편 조개더미의 성격과 의미 등이 신석기 시대와 다소 차이가 나는 부분도 있지만, 삼한 및 삼국 시대에도 많은 조개더미가 전국에 걸쳐 분포하였다. 이것 역시 당시의 사회·문화적 코드를 읽을 수 있는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선사 및 고대의 조개더미 조사와 연구는 고고학적으로 중요한 작업이며, 보존 가치도 매우 높다.

[부산의 조개더미 유적]

부산 지역은 주변이 바다로 둘러싸인 자연 환경적인 요인으로 후기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들이 거주하였다. 현재까지 발굴 조사된 고고학 자료에 의하면 지금부터 8000년쯤에 식량 자원이 풍부한 바닷가에 신석기 사람들이 정착하여 살면서 사냥과 고기잡이, 야생 식물을 채집하여 생계를 꾸려 나갔다. 5000년 전부터는 조, 기장 중심의 잡곡 재배를 하여 원시 농경 생활도 시작하였다.

부산 지역의 신석기 사람들은 여러 가지 생업 활동을 통해 다양한 종류의 빗살무늬 토기를 비롯하여 각종 석기류, 뼈, 연모, 장신구, 의례 용구 등을 만들어 사용하였고, 각종 형태의 주거지와 무덤, 조개더미 등을 남겼다. 이 중에서 각종 생활 폐기물들이 쌓여 만들어진 조개더미가 부산 지역에 살았던 신석기 사람들이 남긴 대표적인 유적이다.

부산 지역은 자연 지리적 환경과 생태적 조건으로 다른 어떤 지역보다 선사 시대의 조개더미 유적이 많이 분포하고 있다. 그동안 이루어진 발굴 조사는 신석기 시대의 해양 문화를 연구하는 데 많은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부산 지역에서 확인된 조개더미 유적은 부산 동삼동 패총, 동삼동 상리 조개더미, 조도 조개더미, 청학동 조개더미, 영선동 조개더미, 암남동 조개더미, 다대포 조개더미, 가덕도 신석기 유적, 대항 조개더미, 장항 조개더미, 범방동 패총, 북정 조개더미, 수가리 유적, 금곡동 율리 조개더미 등 14개소에 달하나, 후대의 교란으로 소멸된 것을 감안한다면 그 수는 훨씬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부산 동삼동 패총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 신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유적일 뿐만 아니라, 신석기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를 종합적으로 보여 주는 유적으로 고고학적 가치가 매우 크다. 이와 더불어 범방동 패총과 수가리 유적 역시 남해안 지역 신석기 문화의 변천 과정과 당시 환경 변화를 이해할 수 있는 많은 유물이 출토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입지에 따른 구분]

부산의 조개더미는 유적의 입지에 따라 크게 내만성(內灣性) 조개더미와 외양성(外洋性) 조개더미로 구분된다. 내만성 조개더미는 강 하류의 내만 지역에 조개더미가 입지하는 형태이며, 범방동 패총과 수가리 유적, 북정 조개더미가 대표적이다. 외양성 조개더미는 외해에 접한 곳에 유적이 입지하는 형태이며, 부산 동삼동 패총, 조도 조개더미, 대항 조개더미, 가덕도 신석기 유적 등이 있다. 이밖에 낙동강 하류를 바라보는 산지의 사면에 형성된 금곡동 율리 조개더미와 같이 특수한 입지를 갖는 형태도 있다.

외양성 조개더미에서는 상어, 방어, 다랑어, 참돔, 물개, 돌고래 등의 외양성 어종과 해수류를 비롯하여 악상어, 가오리, 대구, 쏨뱅이, 정어리, 청새치, 농어, 감성돔, 전갱이, 정어리, 고등어, 흑돔, 삼치, 넙치, 복어, 도미, 대구, 숭어 등의 어류 뼈가 출토되었다. 또한 소라, 굴, 홍합, 전복, 피조개, 백합, 고둥, 가리비, 성게, 개조개, 투박조개, 피조개, 가무락조개 등 각종 조개류도 다량으로 출토되었다.

신석기 사람들은 이들을 포획하기 위해서 먼 바다까지 진출하였을 뿐만 아니라 특히 대형 어종을 포획하기 위해 결합식 조침이나 작살, 그물 등을 이용하기도 하였다. 부산 동삼동 패총에서 출토된 각종 어로 도구와 배 모양 토기는 당시의 어로 활동을 잘 보여 준다. 외양성 조개더미에서 출토된 각종 유물은 부산 지역의 신석기 사람들이 먼 바다까지 진출하여 외양성 어로 활동을 하였음을 보여 준다. 또한 이러한 사실은 대한 해협을 사이에 둔 일본 규슈[九州] 지역과의 지속적인 문화 교류가 이루어지는 기반이 되기도 하였다.

내만성 조개더미에서는 외양성 조개더미와 비교하여 어패류의 종류와 양은 물론 성격 면에서도 차이를 보이고 있다. 수가리 유적에서는 눈알고둥, 총알고둥, 피뿔고둥, 새꼬막, 꼬막재첩, 바지락, 백합, 물맛조개, 굴, 가오리, 농어, 감성돔, 졸복, 대구 등의 내만성 어패류가 출토되었다. 이 중에서 대구는 겨울철 리만 해류를 타고 연해주 연안에서 동해안을 따라 내려온 것을, 다랑어와 고등어는 난류인 쿠로시오 해류를 타고 북상한 것을 포획한 것이다. 이는 당시 신석기 사람들이 각종 어류의 특성과 회유 시기를 잘 알고 있었음을 보여 주는 사례이다.

[의의와 평가]

부산 지역의 조개더미에서는 식량 자원으로 획득한 각종 어패류와 동물 뼈들이 다량으로 출토되었으며, 당시 신석기 사람들이 생업 활동과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한 다양한 도구들이 함께 발견되었다. 때로는 부산 동삼동 패총범방동 패총, 가덕도 신석기 유적과 같이 조개더미 속에서 분묘가 발견되기도 하고, 일본 규슈 지역의 신석기 시대 죠몽[승문(繩文)] 토기와 흑요석제 석기가 출토되기도 한다. 이들 자료는 문자 기록이 없는 신석기 시대의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고 복원하는 데 다양한 정보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당시의 자연 환경과 식생활, 기술 체계, 정신문화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고고학적 가치를 지닌다. 그런 의미에서 조개더미에 대한 조사와 연구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보존·관리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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