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7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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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多大洞烽火山遺蹟 |
영어의미역 | Bonghwa Mountain Remains in Dadae-do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사하구 다대동 산31 |
시대 | 선사/석기 |
집필자 | 하인수 |
[정의]
부산광역시 사하구 다대동에 있는 신석기 시대의 제사 유적.
[개설]
다대동 봉화산 유적은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고지에 있는 산상 유적이다. 정식으로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유적의 정확한 성격은 알 수 없으나, 석부류(石斧類)[돌로 만든 도끼]가 일괄 출토되고 주변에서 관련 유구가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신석기 시대의 해양 활동과 관련된 제사 유적으로 추정된다.
[위치]
다대동 봉화산 유적은 부산광역시 사하구 다대동에 있는 두송산[233.7m] 정상 평탄부에 위치한다. 현재 이곳에는 조선 시대 성종(成宗)~중종(中宗) 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응봉 봉수대가 복원되어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1976년 다대동 두송산 정상에서 응봉 봉수대 복원 공사 중 작업 인부들이 간 돌도끼[마연 석부(磨硏石斧)]와 지석(支石), 뗀 돌도끼[타제 석부(打製石斧)]를 발견하면서 알려졌다. 그러나 유물 수습 당시는 이미 응봉 봉수대의 복원 공사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여서 유구의 흔적이나 유물의 출토 상황을 파악할 수 없었고, 혹시 유구의 흔적이 있을 가능성에 대비해 간단한 트렌치[시굴호(試掘壕)] 조사를 실시하였으나 별다른 구조물이 발견되지 않았다.
[출토 유물]
간 돌도끼 2점, 대팻날 도끼[편평 편인 석부(扁平偏刃石斧)] 4점, 지석 1점, 찰절 석기(擦切石器)[석재의 양쪽 면을 길게 갈아서 끊어내는 방법으로 만든 도구] 1점, 석착(石鑿)[나무에 구멍을 뚫거나 다듬는 데 쓰이는 너비가 비교적 좁고 긴 네모난 연장] 1점 등 총 9점이다. 이들 석기류의 관련성은 불확실하지만 출토 정황을 고려해 볼 때 일괄품으로 추정된다. 간 돌도끼 중 하나는 대형에 속하는데, 크기와 형태로 보아 황해도 지답리 유적과 유사한 특징을 보인다. 대팻날도끼는 평면 형태가 장방형을 이루며, 석착은 세장방형의 편인이다. 찰절 석기는 양쪽 끝이 결실되었으나 한쪽 측면의 찰절구가 남아 있다.
[현황]
다대동 봉화산 유적이 있는 곳은 응봉 봉수대가 복원되어 있고, 유적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의의와 평가]
다대동 봉화산 유적은 출토된 석기류의 형식적인 특징으로 보아 남해안 지역의 신석기 시대 전기[기원전 4,000년 전후]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유적의 입지가 주거 생활을 영위하기에는 부적당하고, 주위의 지형을 잘 조망할 수 있는 입지적 특징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아 해양 의례 행위와 관련된 제사 유적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