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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097
한자 三韓時代-住居
영어의미역 Dwellings of the Three Han States Period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고대/초기 국가 시대/삼한
집필자 이재현

[정의]

삼한 시대 부산 지역의 사람들이 생활한 집과 그에 딸린 부속 시설.

[개설]

우리나라에서는 신석기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움집이 만들어졌다. 신석기 시대의 집터는 대체로 원형이나 방형을 띠는데, 길이가 4~8m인 경우가 많다. 청동기 시대가 되면 초기에는 길이가 10m 이상인 대형 집터가 만들어지는데, 경상남도 진주 대평리 유적의 경우 길이 22m, 너비 9.5m에 이르는 대형 집터도 있다. 그러다가 청동기 시대 중기 이후가 되면 집터의 규모가 작아지는 경향이 있다.

또한 기원전 1세기 무렵에는 남부 지역에서 부뚜막과 온돌 구조가 나타난다. 경상남도 사천 늑도 유적(泗川勒島遺蹟)에서는 집터의 한쪽 벽면에 부뚜막과 외줄 고래를 만든 원시적인 온돌 구조가 확인되었는데, 이러한 형태는 4~5세기 삼국 시대까지 지속된다. 다만, 온돌 대신 점토로 고래를 만든 경우가 많다.

[부산 지역 집터 시설과 형태]

부산에서 확인된 삼한 시대의 집터는 부산광역시 동래구 내성 유적과 기장군 정관읍 용수리 가동 유적이 있다. 내성 유적에서는 기원전 2~1세기에 해당하는 집터 두 동이 확인되었는데, 대부분 파괴되고 모서리 부분만 일부 남아 있었다. 전체적인 형태는 방형이나 장방형으로 추정되며, 2호 집터에서는 북벽 가까이에 단야로(鍛冶爐)로 추정되는 화덕 터가 있었다. 집터 내부에서는 쇠 화살과 쇠 조각, 민무늬 토기와 일본의 야요이[彌生] 토기 조각이 다수 출토되었다.

가동 유적은 3세기부터 6세기에 걸친 마을 유적인데, 그중 삼한 시대의 집터는 다섯 동 내외이다. 집터의 형태는 방형에 가까우며 길이는 4~7m이다. 구덩이를 파고 벽 쪽에는 배수를 위한 도랑을 돌렸고, 도랑 안쪽에는 기둥을 촘촘히 박고 점토를 발라 벽체를 구성하였다. 집터 내부의 한쪽 벽체에는 ‘ㄱ’자 모양의 부뚜막과 고래를 설치하였다. 부뚜막과 고래는 점토에 짚을 섞어 만들었고, 부뚜막 가운데에는 돌을 세워 받침으로 사용하였다.

집터 주변에는 고상 가옥(高床家屋)의 흔적인 기둥 구멍이 다수 확인되었는데, 창고 시설로 추정된다. 이러한 가동 유적의 집터 형태는 경상북도 김천시 모암동의 주거지 유적, 포항시 호동 유적, 경산시 임당 유적 등 경상북도 지역에서도 보편적으로 확인되는 형태이다. 그러나 같은 시기 경상남도 서부 지역의 집터 형태는 원형이나 타원형이 많아 차이가 있다.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의 변진조에는 “집을 지을 때 나무를 가로로 쌓아 만들기 때문에 감옥과 비슷하다”라고 하였고, “의복과 주택은 진한과 같지만 귀신에게 제사 지내는 방식이 달라 문의 서쪽에 부뚜막을 설치하여 조왕신(竈王神)을 모신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렇지만 고고학적 발굴 결과를 보면 변한 지역 내에서도 시기에 따른 집터의 시설이나 형태에서 변화가 있었고, 또한 지역적인 차이도 있다. 부산 지역의 삼한 시대 후기 집터 형태가 경상북도 지역과 유사하다는 고고학적 발굴 결과는 변진의 주택이 진한 지역과 같다는 『삼국지』의 내용과 어느 정도 일치하지만, 문의 서쪽에 부뚜막을 설치하여 조왕신을 모신다는 내용은 발굴된 내용과 다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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