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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087
한자 三國時代-文化遺産
영어의미역 Cultural Assets of the Three Kingdoms Period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홍보식

[정의]

삼국 시대 부산 지역의 문화유산.

[고분]

삼국 시대 문화유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분묘는 구릉에 수십 기 또는 수백 기가 무리를 이루어 분포한다. 분묘 유적의 예로는 부산 복천동 고분군, 연산동 고분군, 반여동 고분군, 부산 오륜대 고분군, 두구동 고분군, 덕천동 고분군, 당감동 고분군, 괴정동 고분군, 미음동 고분군, 미음동·구랑동 고분군, 생곡동 가달 고분군, 좌동 고분군, 송정동 고분군, 기장 청강리 고분군, 반룡리 고분군, 삼성리 고분군, 연구리 고분군, 에코파크빌리지 조성 부지 내 고분군, 도야동 고분군, 기장군 용수리 가동 고분군 등이 조사되었고, 지표 조사에서 확인된 고분군도 다수 있다. 현재 부산 지역 전체에 분포하며, 주로 완만한 구릉의 능선부와 사면에 위치한다.

덧널무덤은 2세기 후반부터 5세기 전반까지 부산 지역의 보편적인 묘제로서 부산 복천동 고분군, 노포동 고분군, 기장 정관 가동 고분군, 기장 청강리 고분군 등에서 다수 확인되었다. 덧널무덤으로만 이루어진 고분군은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았고, 대부분 구덩식 돌덧널무덤과 함께 확인되고 있다. 구덩식 돌덧널무덤이 포함되었을 경우, 덧널무덤이 먼저 조영되고, 이후 구덩식 돌덧널무덤이 조영되는 순서이다.

5세기 후반 이후에도 연산동 고분군과 같이 구덩식 돌덧널무덤이 다수인 일부 고분군에 덧널무덤이 일부 조영되었다. 덧널무덤이 주요한 묘제로 사용된 3세기 후반에서 5세기 전반까지 부산 지역의 중심 고분군은 부산 복천동 고분군이 있고, 그 아래에 노포동 고분군을 비롯한 중·소형분으로 이루어진 고분군이 분포하였다.

4세기 말에 등장한 구덩식 돌덧널은 5세기 초에 부산의 중심 고분군인 복천동 고분군에도 조영되었다. 5세기 후반에는 연산동 고분군을 중심으로 당감동 고분군·오륜대 고분군·반여동 고분군·괴정동 고분군·초장동 고분군·두구동 고분군·고촌리 고분군, 기장군 장안읍 명례리 도야동 고분군, 기장읍 청광리 에코파크빌리지 조성 지역 내 고분군과 양산 법기리 고분군 등 많은 고분군이 조영되었다. 6세기 전반이 되면, 연산동 고분군이 쇠퇴하면서 부산 지역에는 더 이상 고총 고분이 조영되지 않았고, 중소형 고분으로 이루어진 고분군이 새로 등장하거나 5세기 후반부터 조영된 중소형 고분군이 지속되었다. 새로운 고분군으로는 북구 덕천동 고분군, 두구동 임석 고분군, 해운대 좌동 고분군, 좌동 군부대 내 고분군, 송정동 고분군 등이 있고, 5세기부터 지속된 고분군으로는 오륜대 고분군, 반여동 고분군, 당감동 고분군, 초장동 고분군 등이 있다.

6세기 전반에 새로 등장한 고분군의 묘제는 앞트기식 돌방이고, 1기의 중심 고분을 중심으로 주위에 수기 또는 수십 기의 고분이 무리를 이루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그 이전부터 조영된 고분군은 묘제가 구덩식 돌덧널이고, 수기 내지 수십 기가 무리를 이루는 현상도 나타나지 않는다. 6세기 후반이 되면, 구덩식 돌덧널은 대부분 사라지고, 앞트기식 돌방과 굴식 돌방이 조영되는데, 부산 지역에는 굴식 돌방은 기장 가동 고분군에서만 확인되었고, 그 이외는 모두 앞트기식 돌방이다.

[생활 유적]

부산 지역은 바다를 끼고 있는 해안 지역으로서 해안과 밀접한 생활을 영위하였는데, 그러한 흔적들이 조개더미와 저습지에 버려진 조개껍질과 생선 뼈이다. 바다와 밀접한 생활을 영위하면서도 육지에서 서식하는 동·식물을 사냥하거나 가축을 만들어 필요 영양분을 섭취하고, 충적지와 삼림을 개발하고, 몇 개의 마을 단위로 토기를 생산하여 일상생활 용기와 무덤의 부장품을 생산하여 보다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자 노력하였는데, 그러한 흔적들이 최근의 발굴 조사에서 많이 발견되었다.

삼한·삼국 시대의 부산 지역의 생활 관련 유적으로는 주거로 이루어진 마을, 마을 사람들이 목기·칠기·골각기 등을 생산한 생산 시설, 먹고 남은 음식물 찌꺼기나 쓰레기를 버린 조개더미, 도로 등 다양한 성격의 유적이 조사되었다.

1. 강서구 지사동 유적

강서구 지사동의 지사 과학 단지 조성 사업에 따른 발굴 조사 결과, 삼국 시대의 주거지군과 분묘군·제철유구군, 조선 시대의 건물지와 제철 유구가 확인되었다. 삼국 시대의 주거지군은 능선 말단부의 충적 대지에 위치하며, 50여 기 이상으로 이루어졌다.

주거지의 평면 형태는 말각방형·장방형·원형 등 다양하고, 대부분의 주거지 내부에 소토(燒土)가 채워져 있었다. 분묘군은 주거지군으로부터 동쪽으로 50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200여 기 이상의 분묘가 확인되었는데, 덧널무덤, 구덩식 돌덧널무덤, 앞트기식 돌방묘 등의 매장 시설이 확인되었다. 매장 주체 시설은 덧널무덤과 구덩식 돌덧널무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이 분묘들 중 덧널무덤은 주거지군과 같은 시기의 것으로 파악하여 주거지군을 형성한 사람들의 분묘군으로 설정하였다. 이 발굴 조사는 생곡동 가달 고분군의 조사에 이어 강서 지역에서 조사된 중요한 유적이자, 4~5세기 대의 취락과 분묘 구조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2. 기장군 정관읍 용수리 가동 유적

기장군 정관읍 용수리 가동 마을에 위치한 가동 유적은 청동기 시대 주거지 5동, 삼국 시대 주거지 160동, 굴립주(堀立柱) 건물지 86동, 폐기 유구·하도·분묘 15기 등 266기의 유구가 조사되었다. 삼국 시대의 수혈 주거지는 평면 형태가 장방형·방형·타원형·원형·부정형 등 다양한데, 방형이 다수를 차지한다. 주거지 간에 중복이 많이 되었는데, 출토 유물의 분석과 더불어 주거지의 구조 변천을 해명할 수 있는 자료가 되고 있다. 일부 주거지는 증개축의 흔적도 확인되어 주거 사용의 내면을 살필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이 수혈 주거지 내부에는 부뚜막이 있는 온돌 시설과 부뚜막 가까이에서 시루와 장동옹(長胴甕) 등이 출토되고, 일부는 부뚜막에서 지각(支脚)이 출토되었는데, 이러한 자료들의 분석을 통하여 삼국 시대 주거의 내부 구조 복원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굴립주 건물지는 4주(柱)·6주·9주 등과 규모가 아주 큰 굴립주 건물지 등 다양하다. 이 굴립주 건물들 중 일부에서 상태가 양호한 목제 기둥 하부가 출토되었는데, 기둥 아래에 돌 또는 목재를 받친 예도 확인되었다. 또 굴립주 건물지에서 확인된 목재 기둥을 통해 삼국 시대의 굴립주 건물의 복원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폐기 유구와 저습지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목기류가 출토되었는데, 완제품과 미완성품 등이 확인되었다. 특히 목제 신발은 지금까지 출토된 사례가 알려지지 않았으며, 가동 유적의 저습지에서 양호한 상태로 출토되어 삼국 시대 신발 구조에 대한 연구 과제를 남겼다. 저습지와 폐기 유구에는 목기류 이외에 다양한 씨앗류가 출토되었다. 복숭아씨·박씨·오이씨·도꼬마리씨·탄화 곡물 등이 출토되었는데, 이로써 당시의 식생활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뿐만 아니라 목기류와 씨앗류의 수종 및 종자 분석을 통해 당시의 자연 생태 복원도 부분적으로 가능하게 되었고, 당시의 생활 모습과 자연환경을 복원한 고대 마을사의 구상도 가능하게 되었다.

분묘군은 주거군의 남서쪽에 입지하는데, 일부는 굴립주 건물지를 파괴하여, 굴립주 건물지와 분묘의 선후 관계가 확인되었다. 분묘는 구덩식 돌덧널·앞트기식 돌방·굴식 돌방 등이 있는데, 잔존 상태가 좋지 않아 분묘의 정확한 구조 파악은 어려웠다. 앞트기식 돌방과 굴식 돌방은 대부분 1~2회의 추가 매장이 되었다. 분묘의 조영 시기는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전반이었다. 기장 가동 유적의 발굴 조사에 의해 주거 구조, 수혈 주거와 굴립주 건물과의 역할과 관계, 삼국 시대의 마을 구조 및 단위, 인구수, 식생활사, 그리고 당시의 자연환경 복원 등에 대한 다양하면서도 귀중한 정보가 제공되었다.

3. 기장군 철마면 고촌리 유적

2005년에서 2008년까지 조사가 이루어진 기장군 철마면 고촌리의 주택 개발 사업 지구 내에서는 청동기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구가 확인되었다. 특히 삼국 시대의 유구로는 구상 유구, 자갈이 부석된 도로, 수 십동의 굴립주 건물지, 연속된 부정형 수혈, 원지 등이 확인되었다. 굴립주 건물의 경우 4주식·6주식·9주식 등 다양하지만, 원상태로 잔존된 목제 기둥의 확인은 향후 굴립주 건물의 복원에 중요한 자료이다. 자연 습지에서도 삼국 시대의 생업을 알려주는 목기·칠기와 골각기, 각종 생활 도구 등 중요한 자료가 다수 출토되었다.

목기로는 건축부재를 비롯해 절구통과 절구공이, 바가지, 각종 농기구, 구체적인 용도를 알 수 없는 다수의 목기가 포함되어 있다. 생활용기로는 나무빗·망태기, 그리고 아주 짧은 길이지만, 도로 유구의 확인은 삼국 시대 부산의 도로 구조 연구는 물론, 동래에서 기장으로 이어지는 도로망에 대한 연구와 더불어 삼국 시대의 지방 촌락 구조 연구에 일조할 것으로 기대된다.

4. 대라리 유적

부산~울산 간 고속도로 개설 구간 안의 기장 대라리 유적은 2005년 6월부터 발굴이 시작되었고, 유적은 4개의 구릉으로 구분된다. 남쪽의 Ⅰ지구에는 4~5세기 대의 덧널무덤과 구덩식 돌덧널무덤으로 이루어진 고분군이 조영되었고, Ⅱ지구는 고분군과 제사 유구가 위치하고, Ⅲ지구 전체와 Ⅳ지구의 일부에는 수혈주거지·고상건물지·저장공·용도 불명의 수혈 등 일상생활과 관련된 유구가 집중되어 있다. 또 가장 북쪽의 Ⅳ지구 정상부 주위에 3중의 목책 시설로 된 제사 유구가 조영되었음이 확인되었다. 이 네 개 지구의 구릉에 조영된 유구들은 4~6세기 대의 한정된 시기의 복합 유적으로서 이 시기의 대라리 유적을 남긴 집단의 일상생활과 저장, 그리고 제사와 분묘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당시의 생활사 전체를 복원할 수 있는 최적의 자료가 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향후 보다 다양한 자료의 지속적인 발굴과 더불어 지금까지 획득한 정보를 종합·정리하여 심도 있는 연구를 진행한다면, 부산 지역의 삼국 시대 주거 구조와 면적, 단위가족의 구성원 수와 취락의 인구 수, 주거 내부의 활용, 취사 방식 및 취사도구와 식기, 저장 용기의 구성, 저장 시설과 방식, 취락의 규모와 구조 및 공간 활용, 목기·금속기·토기 등의 생산과 공급 관계, 분묘의 구조와 부장품 구성 및 변화, 주거 공간과 분묘 공간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인식, 제사 공간 및 제사 공간의 활용, 일상생활 속의 제사 내용과 형태, 일상 제사와 분묘 제사와의 비교 검토를 통한 사회구조 및 변화의 추이와 생업 경제 등 다양한 부분이 해명될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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