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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077
한자 三國時代-
영어의미역 Tombs of the Three Kingdoms Period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홍보식

[정의]

부산 지역에 있는 삼국 시대의 무덤.

[개설]

현재까지 부산 지역에서 지표 조사와 발굴 조사에서 확인되었거나 조사된 유적 중 가장 많은 것이 분묘 유적이고, 무덤의 종류도 다양하다. 지금까지 조사된 삼국 시대 고분군의 묘제는 덧널무덤, 구덩식 돌방무덤, 독무덤, 앞트기식 돌방무덤, 굴식 돌방무덤, 움무덤이다.

[덧널무덤: 3세기 후반~5세기 전반]

덧널무덤이 주요한 묘제로 사용된 3세기 후반에서 5세기 전반까지 부산 지역의 중심 고분군은 부산 복천동 고분군이고, 그 아래에 노포동 고분군을 비롯한 중형분·소형분으로 이루어진 고분군이 분포하였다. 덧널무덤의 목곽은 지하에 설치하고, 그 위에 봉분을 만들었으나 높이가 1m 내외로 낮을 뿐만 아니라 직경도 크지 않다. 무덤을 만들 당시에는 지상에 봉분이 있었으나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목곽이 무너져 내리고 위에 있던 봉분도 목곽 안쪽으로 내려앉아서 지상에 봉분의 흔적은 없어졌다. 부산 복천동 고분군의 대형 덧널무덤은 별도의 묘광 2개를 60~100㎝ 간격을 두고 만들어서 전체 길이가 12~13m이고, 너비는 3.5~4m로 길이에 비해 너비가 좁은 세장방형이어서 봉분의 평면 형태도 세장방형이거나 장방형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구덩식 돌방무덤: 5세기 후반]

돌로 곽을 만든 구덩식 돌방은 4세기 말에 등장하였는데, 부산 화명동 고분군에서 가장 빠른 형식의 구덩식 돌방무덤이 확인되었다. 부산 화명동 고분군 5·7호 석곽은 석곽 폭이 넓고 나무 뚜껑이 걸쳐졌고, 막돌을 사용하여 석곽을 엉성하게 만들었다. 부산 복천동 고분군의 경우, 덧널무덤에서 구덩식 돌방무덤으로의 변화 과정이 잘 나타난다. 돌덧널무덤 수용 당초의 석곽은 완전히 지하에 위치하고, 묘광과 석곽 사이의 공간이 넓고, 나무 뚜껑을 덮고, 그 위에 1m 내외의 봉분을 쌓았다.

대형 고분은 덧널무덤의 대형 고분과 동일하게 주곽 끝에서 60~100㎝ 간격을 두고, 별도의 구덩이를 만들어 길이 4~5m의 부곽을 설치하였기 때문에 전체 길이가 10~12m이다. 봉분의 평면 형태는 덧널무덤의 그것과 유사하다. 5세기 전반이 되면, 석곽의 사방 모서리 부분이 말각에서 직각으로 변하고 묘광과 석곽 벽 사이의 보강 공간이 넓은 것에서 좁은 것으로 변하며, 충전 공간에 흙과 활석을 채워 넣었고, 가공한 석재를 정연하게 쌓고, 그 위에 아주 큰 뚜껑 돌 여러 매를 덮는 등 새로운 석곽 축조 기술이 나타났다.

이와 같은 석곽 축조가 가능했던 점은 소형묘에 수용된 구덩식 돌방무덤이 어느 정도 기술적인 축적을 가져왔고, 구덩식 돌방무덤이 덧널무덤보다 덮개로 석재를 사용하기 때문에 부식으로 인한 봉토의 붕괴 위험이 없고, 축조에 보다 전문적 기술이 요구되는 등 선진적인 묘제 구조였기 때문이다. 5세기 후반이 되면, 부산 지역의 모든 고분군에 구덩식 돌방이 조영되면서 보편적인 묘제로 자리 잡는다. 연산동 고분군은 구릉 능선을 따라 북쪽에서 남쪽으로 가면서 모두 16기의 큰 무덤이 조영되었고, 동·서·북쪽 사면에는 중소형의 구덩식 돌방무덤이 조영되었다. 구릉 능선에 위치한 대형 고분은 지하에 길이 10~13m의 석곽을 만들고, 그 위에 직경 20~24m×16~18m, 높이 5~8m 크기의 봉분을 만들었다.

[앞트기식 돌방무덤과 굴식 돌방무덤: 6세기]

6세기 전반이 되면, 연산동 고분군이 쇠퇴하면서 부산 지역에는 더 이상 고총 고분이 조영되지 않고, 부산 덕천동 고분군, 두구동 고분군, 해운대 좌동 고분군, 좌동 군부대 내 고분군, 송정동 고분군 등 중소형 고분으로 이루어진 고분군이 새로 등장하거나 5세기 후반부터 조영된 중·소형 고분군이 지속되었다.

6세기 전반에 새로 등장한 고분군의 묘제는 앞트기식 돌방이고, 1기의 중심 고분을 중심으로 주위에 수기 또는 수십 기의 고분이 무리를 이루었지만, 그 이전부터 조영된 고분군은 묘제가 구덩식 돌방이고, 수기 내지 10여 기가 무리를 이루는 현상도 나타나지 않는다. 6세기 후반이 되면, 구덩식 돌방은 대부분 사라지고, 앞트기식 돌방과 굴식 돌방이 조영되는데, 부산 지역에는 굴식 돌방이 기장군 용수리 가동 고분군에서만 확인되었고, 그 이외는 모두 앞트기식 돌방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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