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30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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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鐵器時代 |
영어의미역 | The Iron Ag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선사/철기 |
집필자 | 백승충 |
[정의]
부산 지역에서 철기를 도구로 만들어 사용한 시대.
[개설]
우리나라의 철기 시대를 기원전 7~5세기경으로 주장하는 경우도 있으나, 일반적으로 기원전 4~3세기부터 신라 토기의 발생과 고총 고분이 출현하는 서기 3세기까지로 본다. 부산을 비롯한 한반도 남부 지역이 본격적인 철기 시대로 진입한 시기는 삼한 시대로 일컬어지는 때부터이다. 즉 기원전 2세기경 위만(衛滿)이 고조선의 권력을 차지하자 남하한 준왕(準王) 집단, 위만 조선의 멸망, 한사군[한(漢)나라가 설치한 4개의 군현]과의 교류로 철기의 도입은 더욱 본격화된다.
부산 지역에서도 철기 시대의 징표로 알려져 있는 늑도식 토기의 출현과 독로국(瀆盧國) 혹은 거칠산국(居漆山國)으로 대변되는 동래 지역에서 출토된 여러 유적과 유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부산을 포함한 남부 지역에 철기 문화가 빠르게 보급되면서 철을 매개로 한 교역이 성행하였다. 이로써 여러 계통의 문화가 융합되고, 농경 개선, 목축 성행, 어업 발달 등의 변화를 가져왔다.
[철기의 사용과 독로국]
부산 지역에서 철기를 사용한 시점은 준왕의 남하를 기점으로 한 기원전 2세기부터인데, 철기의 수용과 사용은 관련 유적과 유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영도구에 있는 조도 조개더미에서 철기 시대를 알리는 징표로 해석되고 있는 늑도식 토기가 출토되었다. 삼천포 늑도 유적은 기원전 2세기에서 1세기 사이의 유적으로 알려져 있는데, 판상 쇠도끼·철검편(鐵劍片)·쇠손칼 등 각종 철기와 함께 늑도식 토기가 대량으로 출토되었다. 늑도식 토기는 민무늬 토기의 하나인 점토띠 토기의 아가리 부분이 단면 원형에서 단면 삼각형의 점토띠 토기[단면 삼각형 구연 점토대 토기(斷面三角形口緣粘土帶土器)]로 바뀌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기원 전후가 되면 본격적으로 철기가 보급·확산된다. 종래의 고인돌·민무늬 토기·간석기를 대신하여 널무덤·와질 토기(瓦質土器)·철제품이 새롭게 등장하고, 대외 교섭의 대상도 확대되어 중국·북방·백제·왜 등 여러 계통의 문화가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한편 삼한 및 삼국 시대 부산의 정치체로서는 거칠산국·장산국(萇山國)·내산국(萊山國)·봉래현(蓬萊縣) 등이 보이고 있다. 이들 국명 혹은 지명은 『삼국지(三國志)』 「위지동이전」 ‘한 조’에 보이는 변한(弁韓) 12국 중 하나인 독로국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독로국이 정확히 언제 형성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변한의 성립 시기를 기원전 1세기 전후라고 볼 때 비슷한 시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독로국의 위치에 대해서는 ‘경상남도 거제도 설’과 ‘부산 동래 설’ 등이 있으나, 입지 조건이나 유적 분포 그리고 철 생산 유구 등 여러 조건을 고려해 볼 때 부산 동래 설이 타당하다고 여겨진다.
[변한 12국의 사회와 문화]
변한 12국의 사회와 문화에 대해 『삼국지』 「변진전」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정치와 사회에 대해서는 “변진 12국에는 왕이 있고, 각기 별읍(別邑)이 있으며 각각 거수(渠帥)가 있는데, 큰 것 순서에 따라 신지(臣智), 험칙(險側), 번예(樊濊), 읍차(邑借)가 있으며, 대국(大國)은 4,000~5,000가, 소국(小國)은 600~700가, 총 4만~5만 호인데, 그 중에 12국은 진왕(辰王)에게 속하였다. 진왕은 항상 마한(馬韓) 사람이 대대로 계승하여 진인(辰人)이 스스로 서서 왕이 될 수 없으며, 『위략(魏略)』에서는 그들은 이동하여 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마한의 견제를 받았다.”라고 하였다.
또 생활과 풍습에 대해서는 “사람들은 몸이 크고 의복이 깨끗하고 머리가 길며, 폭 넓은 가는 베를 짜고 엄하였다. 토지는 기름져서 오곡과 벼가 잘되고 누에치기를 익히 알아서 겸포(縑布)[합사 비단으로 꼰 실로 제직한 견직물]를 짤 줄 알고, 소와 말을 사역할 줄 알고 혼인 풍속은 남녀가 차별이 있다.”라고 하였다. 또 사람이 죽었을 때는 “큰 새의 깃으로 죽은 사람을 장송하는데, 이는 죽은 사람이 하늘로 날아오르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였다. 집을 지을 때는 “통나무를 가로로 쌓아서 짓는다.”라고 하였다.
또한 “노래와 춤을 즐기고 술을 마시며, 축과 같은 비파(琵琶)가 있어 타면 소리가 난다.”라고 하였고, “아이가 태어나면 곧 돌로써 그 머리를 눌러서 편편하게 하는데, 진한인의 머리가 모두 편편한 것은 이 때문”이라고 하였다. “남녀가 왜가 가까운 곳에서는 문신을 하며, 걸으면서 싸우는 보전(步戰)을 잘하고 무기는 마한과 같으며, 길을 가다가 만나면 서로 길을 양보한다.”고 하였다. “변진도 진한과 섞여 살며 성곽이 있고, 의복, 거처가 진한과 같으며, 말과 법속도 서로 비슷하지만, 귀신을 제사함은 서로 다르고, 부엌은 모두 집 서쪽에 둔다.”고 하였다.
한편 경제와 교역에 대해서는 “나라에서 철을 생산하는데, 한(韓)·예(濊)·왜(倭)가 모두 여기에서 취해 가고, 물건을 사고파는 데도 모두 철을 쓰는데, 마치 중국에서 돈을 쓰는 것과 같이 한다.”라고 하였다. 또 “철을 낙랑·대방에 공급한다.”라고 하였다. 독로국의 위치에 대해서는 “왜와 더불어 (바다를 격해) 경계를 접하고 있다.”라고 하였다.
[철기 문화의 특징]
부산을 비롯한 남부 지역 철기 문화의 특징은 우선 한국식 동검(韓國式銅劍)과 후기 민무늬 토기의 표식인 점토대 토기(粘土帶土器) 문화의 출현, 뒤이은 와질 토기 문화의 성립이다. 한국식 동검은 좁은 놋단검·세형 동검(細形銅劍)·청동 단검(靑銅短劍)이라고도 하는데, 주로 청천강 이남에서 발견되었으며 몸통 가운데에 굵은 허리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점토대 토기 문화의 두드러진 현상은 늑도식 토기의 출현이라 할 수 있는데, 즉 단면 원형 구연 점토대 토기에서 단면 삼각형 구연 점토대 토기로의 변화인 것이다.
한편 와질 토기는 원삼국 시대의 가장 표식적인 토기 문화로 여겨지고 있는데, 이는 재래의 민무늬 토기 문화의 기반 위에 환원염 소성(還元焰燒成)이라는 새로운 제도술(製陶術)이 도입되면서 생성된 남부 지역 특유의 토기 문화로 정의되고 있다.
두 번째로 묘제(墓制)의 변화와 철기 문화의 보급 및 발달이다. 삼한 시대의 변한 사회는 전대의 고인돌 무덤을 대체하는 널무덤과 덧널무덤의 보급, 철기 문화의 성립 및 발달, 한사군 등 외래계 유물의 등장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특히 철기 문화의 보편화는 농·공구를 철로 만들면서 생산력이 향상되었고, 철제 무기류가 발달하면서 전쟁을 통한 사회의 통합과 재편성을 가져왔다.
[철기 문화 유적]
지금까지 부산 지역에서 확인된 철기 시대 유적으로는 온천동 유적, 부산 복천동 고분군, 구서동 유적, 복산동 분묘군, 노포동 유적, 부산 동래 패총, 조도 조개더미 등 모두 7개소가 확인되었다. 이러한 현황은 삼한 시대가 부산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상당히 적은 것인데, 급격한 도시화로 인한 많은 유적이 소실된 것이 그 중요한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여 이들 유적에서 출토되는 다량의 철제품과 토기류 등은 부산이 이른 시기부터 선진적인 지역이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현재 발굴 조사된 분묘 유적을 중심으로 유물 출토 상황을 간략하게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부산 동래 패총은 온천천 가까이에 형성된 생활 폐기 터로서 시기는 2세기 후반~3세기 후반이며, 연질 토기(軟質土器)와 와질 토기 및 도질제의 토기류, 주조 쇠도끼·철침·낚시 바늘 등의 철기, 화살촉·침·사슴뿔 등의 골각기, 동물의 뼈가 많이 출토되었다. 이외에 가락바퀴와 원판형 토제품도 출토되었다.
조도 조개더미는 2개 지구 중 Ⅰ지구가 3세기 후반을 중심으로 형성된 삼한 시대의 유적이다. 출토 유물로는 다수의 연질옹(軟質甕)을 비롯한 와질 토기편과 왜의 하지끼계[토사기(土師器)] 토기 구연부편(口緣部片)을 비롯한 외래계 유물과 쇠낫[철겸(鐵鎌)]과 쇠손칼, 철검(鐵劍), 뼈 화살촉과 쇠화살촉 등을 비롯한 완전한 형태의 인골 1구가 확인되었다.
노포동 유적은 3세기 중엽~4세기 초까지 조영된 분묘 유적이다. 삼한 시대의 덧널무덤 45기와 독무덤 6기 등 총 53기의 유구가 확인되었고, 유물이 출토된 유구는 36기이다. 출토 유물로는 토기·철기·칠기 등이 있는데, 특히 지배 계급의 분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많은 양의 철기가 출토되었다. 토기류는 와질 토기 및 원저 단경호(圓底短頸壺)와 연질옹 등 이른 시기의 도질 토기가 출토되었다. 철기류는 자루 고리 긴 칼, 쇠투겁창, 쇠낫, 단조 쇠도끼, 쇠손칼 등 다양한 종류의 유물이 다수 출토되었다.
복산동 고분군은 복천동 고분군과 동일 구릉상의 남쪽에 위치하는데, 두 고분군은 시기적으로 성격적 상호 연계가 있는 것으로 보았는데, 널무덤 1기와 초기 덧널무덤 5기가 조사되었다. 출토 유물로는 다양한 종류의 토기류와 철기류, 소형 방제경(倣製鏡) 등이 확인되었다.
부산 지역에서 확인된 7개의 철기 시대 유적은 각각 부산의 초기 철기 시대, 삼한 시대의 문화적 양상과 특징을 단편적으로나마 계승해 가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복산동 분묘군에서는 널무덤에서 덧널무덤으로 이행해 가는 과도기적 문화상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조도 조개더미와 부산 동래 패총 등에서 출토된 일본 북규슈[北九州] 또는 산음(山陰) 계통의 하지끼계 토기와 백제계, 울산, 경주, 대구 지역계 등 외래계 유물은 이 지역이 문화 교류의 중심지였음을 입증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