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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 시대의 해양 교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098
한자 三韓時代-海洋交流
영어의미역 Marine Trade of the Three Han States Period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고대/초기 국가 시대/삼한
집필자 이양수

[정의]

삼한 시대 부산 지역에서 이루어진 해양 교류.

[개설]

부산 지역에서 해양 교류를 행한 증거로 조도 조개더미, 동래 내성, 온천동, 노포동 등지에서 야요이[彌生] 토기가 출토되고 있다. 특히 내성 유적에서는 철기의 가공과 관련된 유구(遺構)에서 야요이 토기가 출토되어 왜인들이 철기를 구하기 위해 바다를 건너 부산 지역에 일정 기간 정착하였을 가능성을 보여 준다.

부산 지역 독로국(瀆盧國)의 발전에서 대외 교역은 중요한 축이었다. 철 자원을 통해 성장한 독로국은 철기의 제작 기술뿐 아니라, 그것을 수출하는 유통망의 정비를 통해 국가로 발전해 나갔을 것이다. 그리고 왜와 중국 군현을 상대로 교역을 하는 전문 집단이 존재하였을 것이다.

[변천]

독로국이 속한 변한의 해양 교류는 김해 구야국(狗邪國)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며 3단계로 구분할 수 있는데, 2단계부터 교류가 활발해진다. 먼저 1단계는 기원전 3세기로, 주변과의 교역이 그리 활발하지 않아 어느 지역도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한다. 다만 해안을 따라 분포하는 요령식 동검의 재가공편이 남해안 일대의 교역 및 교섭 루트를 보여 준다.

2단계인 기원전 2세기 초부터 기원후 1세기 중엽에는 가장 활발한 대외 교역이 이루어진 시기로, 바닷길이 정비되어 김해·부산이 교역망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왜와의 교역이 점차 증가하기 시작하는데, 야요이 시대 중기 전반에 해당하는 조노코시[城ノ越]식 토기가 출토되는 부산광역시 영도구 조도 조개더미, 사천 늑도 유적, 사천시 사남면 방지리, 김해 흥동 유적 등을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삼각형 점토대 토기 문화의 교역 루트를 이용하여 왜인들이 교역을 하는 양상으로 파악된다. 해안선을 따라 교역망이 형성되기 시작하며 각 지역에 세력이 성장하는 과정으로 보인다. 상위층의 위신재(威信財)로 중국 한식(漢式) 문물이 내륙을 통해 유입되고 바다를 통해 야요이 토기가 남해안 일대에 분포하는 시기이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철을 매개로 한 교역이 시작되는 시기이다.

3단계는 1세기 후반에서 2세기 중반까지이며, 구야국독로국이 교역망을 통제하기 시작하는 단계이다. 또한 내륙 루트가 축소되면서 진한의 중심지인 경주에서는 교역품이 거의 확인되지 않는다. 이는 철의 교역에 안전한 교역망의 유지가 내륙보다 바닷길이 더 나았기 때문이며, 이로써 대외 교역 경쟁에서 변한이 진한보다 우위에 설 수 있었던 것이다.

한사군(漢四郡)의 문물은 김해·고성에서 확인되어 해로를 통한 유입을 상정할 수 있다. 이 시기의 특징은 본뜬거울[倣製鏡]에 있다. 진한에서 변한으로 본뜬거울의 제작 지역이 이동하고 김해시 주촌면 양동리를 중심으로 본뜬거울 제작이 급속도로 증가한다. 하지만 점차 본뜬거울은 사라지고 광형 동모(廣形銅鉾)가 그 자리를 대체한다. 또한 서해안과 동해안 해로를 이용한 교역이 중심이 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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