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24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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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兄邊部曲 |
영어의미역 | Lowest-class People’s Town in Hyeongbye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부산광역시 남구 용당동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정미숙 |
[정의]
고려 전기 부산광역시 남구 용당동에 설치된 지방 통치 구역.
[제정 경위 및 목적]
고려 전기의 부곡(部曲)은 대개 전쟁 포로나 범죄인을 집단 거주시키거나 반란이 일어난 향읍(鄕邑)의 지위를 떨어뜨리는 데서 생긴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고려는 후삼국 통합 전쟁을 하면서 고려에 저항한 호족 휘하의 주민들을 강제로 부곡민으로 편성하기도 하였다. 후삼국 시대 부산 지역은 견훤(甄萱)의 영향력 아래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따라서 고려 건국 이후 동래는 울주군의 속현으로 강등되고 동래현(東萊縣)의 영역 안에 4개의 부곡, 1개의 향(鄕), 3개의 염소(鹽所)가 설치되었다.
[관련 기록]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23 동래현 고적(古跡)에 “고지도 부곡(古知道部曲) 즉 고지도(古智島)를 말한다. 조정 부곡(調井部曲) 현 북쪽 20리에 있다. 형변 부곡(兄邊部曲) 현의 남쪽 해안에 있다. 신라 때는 남해 신(南海神)을 여기에 모셨다. 중사(中祀)에 실려 있다. 부산 부곡(富山部曲) 즉 부산(釜山)을 말한다. 생천향(生川鄕) 현의 남쪽 20리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내용]
형변 부곡은 동래현의 남쪽 해안이며, 신라 시대에 남해 신을 제사 지내던 곳이라는 기록이 있다. 신라의 국가 제사 가운데 ‘중사’가 있으며, 그중 변경 지역에 위치하여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설치한 사해(四海)에 대한 제사가 있었다. 남해 신이 사해 신(四海神) 가운데 하나이다. 형변 부곡의 위치는 현재 부산광역시 남구 용당동으로 비정되는데, ‘용당(龍塘)’은 해신을 모신 집이라는 뜻으로 용왕을 모신 당집이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변천]
형변 부곡이 사라진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12세기 이후 민의 항쟁이 전국적으로 발생하면서 향·부곡 등의 특수 행정 구역은 소멸하게 된다. 형변 부곡도 이 시기 이후 조선 시대에 일반 촌락으로 승격하였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형변 부곡은 신라 시대 제장(祭場)으로 설정된 곳이 고려 시대 부곡으로 편제된 희귀한 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