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24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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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冬至佛供 |
영어의미역 | Buddhist Prayer in Winer Solstice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
지역 | 부산광역시 |
집필자 | 박기현 |
[정의]
부산 지역에서 동짓날에 절을 찾아 가서 불공을 드리는 풍습.
[개설]
동지 불공은 불교를 신봉하는 부녀자들이 동짓날[양력 12월 22일 무렵] 사찰에 가서 공양물로 팥죽을 올리고 한 해를 마무리하며 새해의 발원(發願)을 다짐하는 풍속이다. 하지(夏至)에서부터 짧아져 가는 낮이 동지(冬至)에 이르면 극한을 이루고, 그 이후로는 다시 낮이 길어지기 시작한다. 따라서 옛날 사람들은 동지를 태양의 재생, 즉 부활의 날로 여겨 신년에 어울리는 여러 가지 풍속을 행했다. 오랜 세월 민간과 밀접한 영향을 맺어 왔던 불교에서는 민간의 풍속을 받아들여 동짓날이면 동지 불공을 드렸다. 이는 전국적으로 널리 행해진 풍속으로 부산 지역에서도 부녀자들이 동지가 되면 인근 각지의 사찰에 가서 팥죽을 공양하며 불공을 드리고 있다.
[연원 및 변천]
동지 불공은 민간의 세시 풍속과 불교 의식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풍습이라 할 수 있다. 신라와 고려에서는 동지를 전후하여 국가적 종교 행사인 ‘팔관회(八關會)’를 지냈는데, 이를 ‘중동팔관회(仲冬八關會)’라고 했다. 조선 후기 홍석모(洪錫謨)[1781~1857]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동지를 작은설[亞歲]이라 하여 새알 모양의 떡을 넣은 팥죽을 쑤어 먹는다든가, 팥죽을 문짝에 뿌려서 사귀를 쫓는다든가 하는 풍속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동지에 팥죽을 먹는 관습은 중국 육조 시대 기록에도 보이는 오래된 관습이다. 이를 보아 부산 지역에서 동지 불공이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그 유래가 매우 오래된 풍속임은 짐작할 수 있다.
[절차]
동지 불공은 일반적으로 헌공(獻供), 정례(頂禮), 참회(懺悔), 발원(發願), 회향(回向), 시식(施食)의 순서로 행해진다. 동지 불공에서는 한 해 동안의 잘못을 뉘우치고 새해의 소망을 기원하는 송구영신(送舊迎新)의 의미가 강조된다. 불공을 마친 후에는 팥죽을 함께 나누어 먹기도 하며, 한 해 동안의 액(厄)을 제거하기 위해 입고 있던 옷가지를 불에 태우는 소대의식(燒臺儀式)도 행한다. 조계종 범어사[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546번지], 천태종 삼광사[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초읍동 131번지] 등 부산 지역의 사찰에서도 동지에 불공을 올리는데, 동지 불공을 할 때는 팥죽을 쑤어 불전에 공양하고 그것을 함께 나누어 먹는다. 또한 불공이 끝나면 신도들은 다음 해 달력을 받아 가고, 집으로 돌아갈 때는 팥죽을 얻어 가 가족과 이웃이 나누어 먹으면서 새해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기도 한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동짓날 불공으로 올린 팥죽은 불교 의례에 의하여 정화되고 염력(念力)이 깃들었다고 믿는 제물이다. 따라서 부녀자들은 팥죽을 불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 얻어 가서 가족과 나누어 먹고, 새해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기도 한다. 지금도 민간에서는 동지를 ‘작은설’이라는 의미의 아세(亞歲)라 하여 어느 집이나 팥죽을 쑤어먹으며 경사스러운 날로 여긴다. 동지의 붉은 팥죽은 정초의 떡국과 같은 나이를 더 먹는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경기도에서는 이날 사당에 팥죽으로 차례를 지낸 다음 방, 마루 등에 한 그릇씩 퍼 놓고 식구들이 둘러앉아 먹거나 팥죽을 집 안에 뿌리고, 동네 앞의 큰 고목 등에도 뿌려 잡귀의 동네 침입을 막는 곳도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