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천승호·천승호 처 경주 이씨 정려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2132
한자 千乘昊-千乘昊妻慶州李氏旌閭碑
영어의미역 Stone Monument for Honoring the Virtue of Filial Son Cheon Suengho and His Wife Gyeongju Yi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부산광역시 북구 효열로 158[금곡동 100-1]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유영옥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비|정려비
관련인물 천승호(千乘昊)[1817~1866]|천승호 처 경주 이씨|천치순(千致淳)
재질 석재(石材)
크기 비석 149㎝[높이]|63㎝[너비]|15.5㎝[두께], 좌우 돌기둥 135㎝[높이]|72㎝[너비]|14㎝[두께]
건립 시기/일시 1872년 11월 16일연표보기 - 건립
이전 시기/일시 1996년 3월 - 이전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1817년연표보기 - 천승호 출생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1866년연표보기 - 천승호 사망
현 소재지 금곡 청소년 수련관 - 부산광역시 북구 금곡동 100-1지도보기

[정의]

부산광역시 북구 금곡동에 있는 개항기 효자 천승호(千乘昊)천승호 처 열녀 경주 이씨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건립 경위]

천승호·천승호 처 경주 이씨 정려비(千乘昊·千乘昊 妻 慶州 李氏 旌閭碑)영양 천씨(穎陽千氏) 천승호[1817~1866]의 효행과 그의 처 경주 이씨(慶州李氏)의 정렬을 기리는 비이다. 천승호는 효성이 지극하여 하늘을 감동시켜 한겨울에 구렁이를 구해 어머니의 병을 낫게 하였으며, 부인 경주 이씨는 남편과 함께 시부모를 봉양하고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자결하였다. 이에 유림들이 양산 군수에게 추천서를 올려 1872년(고종 9) 조정에서 효자·열녀 정려비를 세워 후세의 귀감으로 삼았다. 이때 천승호는 정3품 당하관 통훈대부 사헌부 감찰에 추증되었고, 부인 경주 이씨에게는 숙인(淑人)의 작호가 내려졌으며, 그 자손에게는 세금과 부역(賦役)이 면제되었다.

[위치]

천승호·천승호 처 경주 이씨 정려비부산광역시 북구 금곡동 100-1번지 금곡 청소년 수련관 내에 있다.

[형태]

정려비의 크기는 높이 135㎝, 너비 72㎝, 두께 14㎝이다. 귀부(龜趺)와 이수(螭首) 없이 사각형의 비신(碑身)만 세웠는데, 비신 머리 양쪽을 세모로 줄인 형태이다. 비석 양옆에는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로 옥개석 모양의 개석(蓋石)을 덮어 마치 비각처럼 비석을 보호하고 있다.

[금석문]

비의 앞면에는 “효자 증 통훈대부 사헌부 감찰 영양 천공승호지려 열녀 감찰 천승호 처 증 숙인 경주 이씨지려 자 치순[孝子贈通訓大夫司憲府監察潁陽千公乘昊之閭 烈女監察千乘昊妻贈淑人慶州李氏之閭 子致淳]”이라고 적혀 있고, 뒷면에는 “동치 십일년 임신 십일월 십육일 수(同治十一年壬申十一月十六日竪)[동치 11년 임신년(1872) 11월 16일에 세움]”라고 되어 있다.

[현황]

현재 금곡 청소년 수련관 정원에 있는데, 그 옆에 “이 정려비는 원래 금곡동 율리 부락에 있었으나 도시 개발로 이전하게 된 바 북구청과 낙동향토문화원의 협조로 현 장소로 이전하게 되었다. 1996년 3월”이라는 지석(誌石)이 놓여 있다. 또 천승호의 효행과 부인 경주 이씨의 열행(烈行)을 기록한 안내판도 옆에 세워 두었다.

[의의와 평가]

천승호·천승호 처 경주 이씨 정려비는 지역의 효자와 열녀의 흔적을 찾을 수 있어, 현재 젊은이들이 귀감을 삼을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