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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청 선생안』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1694
한자 將官廳先生案
영어의미역 Record of Officials at Janggwancheong Administrative Office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장동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도서
권책 2책
규격 26×20㎝|29.5×21㎝
편찬 시기/일시 1739년 9월연표보기 - 개안본 편찬
편찬 시기/일시 1778년연표보기 - 초안본 편찬
소장처 충렬사 - 부산광역시 동래구 안락동 838지도보기

[정의]

조선 후기 동래부의 무청 가운데 핵심을 이루는 장관청의 중군, 천총, 파총, 초관 등의 성명을 수록한 선생안.

[편찬/간행 경위]

『장관청 선생안(將官廳先生案)』은 세 종류이다. 가장 앞서는 것은 1739년 9월에 만든 것인데, 여기에는 ‘개안(改案)한다’는 주기가 있다. 따라서 이것에 앞서 성명을 수록했던 원본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현존하지는 않는다. 실제 여기에 수록된 인물은 1700년도 전반의 인물이다. 두 번째 것은 1778년에 만들어진 것인데, 겉표지에 제명을 ‘장관청 선생안(將官廳先生案)’으로 썼으며, ‘무술칠월(戊戌七月)’이라고 옆에 달아 놓았다.

전후 문맥으로 보아 1739년 개안본을 1778년에 새로 만들어 여기에 등재하기 시작했고, 이어 세 번째로 다시 중수하면서 이것이 쓸모없게 되자 ‘초안(草案)’이라고 주기를 단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앞서 1739년 9월에 개안한 것과 1778년 초안본의 겉표지에 ‘무용(無用)’이라고 쓰여 있어 모두가 용도 폐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충렬사에 소장된 것 중 가장 늦게 만들어진 선생안으로, 간행 시기를 정확하게는 알 수 없으나 대체로 19세기 중반 이후의 것으로 보인다. 시기적으로 19세기 말까지 수록하고 있어, 1739년 개안본이나 1778년 선생안에 비하여 현저하게 내용이 많다. 최근 세 종류 중 가장 늦게 만들어진 개등안(改謄案)은 『동래 사료(東萊史料)』[여강출판사]에 영인 수록되어 있는데, 영인 과정에서 파총과 초관의 순서가 바뀌거나 빠진 것이 있다.

[형태/서지]

필사본이며 2책으로 되어 있다. 크기는 각각 26×20㎝, 29.5×21㎝이다.

[구성/내용]

『장관청 선생안』은 가장 늦게 만들어진 개등안으로, 19세기 말까지 중군(中軍) 177명, 천총(千摠) 478명, 파총(把摠) 820명, 초관(哨官) 2,721명 등 도합 4,296명이 수록되어 있다. 장관청은 속오군과 아병군을 맡고 있는 무청이며, 무청 가운데 가장 핵심을 이룬다. 이 무청의 임원인 중군(中軍)은 동래 지역 군 부대의 책임자이다. 이른바 군대의 총사령관은 동래 부사이지만, 군사 업무를 실제로 담당하고 군대를 통솔하는 이는 중군인 것이다. 따로 중군청을 두고 독립 청사를 가질 정도로 중요한 직책이다.

동래 지역의 중군은 중앙에서 차견하거나 동래 부사가 직접 데리고 오는 직책이 아니며, 동래 지역 출신 중에서 차임하는 직책으로서 오랫동안 향반들이 중시하는 자리의 하나이다. 중군 아래 천총도 상급 무임에 해당하며, 파총도 마찬가지로서 향반들이 무임에 진출할 경우 대체로 파총부터 출발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중군은 종2품 무관직으로 중앙에서 파견되었고 나머지 무관들은 지방민으로 편성되었다. 『장관청 선생안』을 보면, 천총 박종하(朴宗河)는 초관의 명단에도 보이는데, 이는 박종하가 초관과 파총 등 필요한 무관직을 역임한 후 천총으로 승진되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의의와 평가]

『장관청 선생안』은 무관들의 명단으로, 조선 후기 동래 지역의 군사 행정과 사회사의 일면을 밝히는 데 도움을 주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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