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별군관청 선생안』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1617
한자 別軍官廳先生案
영어의미역 Record of Officials at Byeolgun Administrative Office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손숙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도서
권책 2책
편찬 시기/일시 1767년연표보기 - 편찬
소장처 기영회 - 부산광역시 동래구 수안동 501-1지도보기
소장처 충렬사 - 부산광역시 동래구 안락동 반송로 393지도보기

[정의]

조선 후기 동래 지역 군관청 구성원들의 명부.

[편찬/간행 경위]

『별군관청 선생안(別軍官廳先生案)』은 1767년에 동래 지역 군관청의 무임을 역임한 사람들의 위계와 조직화를 위해 이들 구성원의 성명을 기록한 명부이다.

[형태/서지]

『별군관청 선생안』은 2책이 남아 있으며 필사본이다. 기영회와 충렬사에 각각 1책씩 나누어 소장하고 있다. 『별군관청 선생안』은 1767년에 처음 만들었지만, 수록된 인물들은 1758년에 근무한 이들부터 소급하여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구성/내용]

『별군관청 선생안』은 조선 후기 동래에 설치된 군관청에 소속된 구성원들을 직책별로 입속 순서에 따라 수록한 명부이다. 19세기 후반에는 군관청장관청의 기능을 합쳐 장청(將廳)이라는 하나의 무청으로 만드는 지역이 다수 나타났다. 그러나 동래는 19세기 이후에도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하였다. 이것은 동래 지역의 군사적 중요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별군관청 선생안』은 바로 이러한 군관청에 근무한 사람들의 성명을 적어 놓은 것이다.

기영회 소장본 표지에는 ‘무인 이후 별군관청 선생안(戊寅以後別軍官廳先生案)’으로 되어 있고, 첫 페이지에는 ‘건륭삼십이년 정해 사월 일 무인 이후 별군관청 선생안(乾隆三十二年丁亥四月日 戊寅以後別軍官廳先生案)’이라고 표기되어 있어, 1767년에 작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어 ‘무인 이후(戊寅以後)’라고 되어 있는데 짐작컨대 1767년 이전의 무인년부터 별군관청의 역임자를 기록하였음을 시사한다.

무인년이 어느 해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18세기 후반에 활동한 변박(卞璞)이 행수 군관의 명단 중 22번째에 나오므로 이 무인년은 1758년으로 추정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것을 종합하여 볼 때 『별군관청 선생안』은 1767년에 처음 만든 것으로 짐작된다. 다만 별군관청에서 근무한 이들의 성명을 1758년에 근무한 이들부터 소급하여 수록했던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충렬사 소장본은 제명이 ‘별군관청외 선생안(別軍官廳外先生案)’으로 되어 있으며 표제 다음 장인 첫 페이지에 ‘건륭삼십이년정해사월일무인이후외선생안(乾隆三十二年丁亥四月日戊寅以後外先生案)’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별군관청 선생안』에 기재되어 있는 군관청의 직임을 보면 행수(行首), 병방(兵房), 군기감관(軍器監官), 별군관(別軍官), 대솔군관(帶率軍官)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영회 소장본에는 행수 141명, 병방 271명, 군기감관 81명, 별군관 456명, 대솔군관 586명을 역임한 순서대로 등재하였다. 반면 충렬사 소장본은 행수 142명, 병방 289명, 군기감관 81명만 수록되어 있을 뿐 별군관과 대솔군관은 빠져 있다. 행수, 병방, 그리고 군기감관은 다소 차이가 있으나 거의 일치한다. 또한 이 두 선생안은 각 직임안(職任案)마다 표기 내용, 즉 개명(改名)에 관한 기록과 이름 위의 ‘선(仙)’ 자 표기 등이 다르다.

[의의와 평가]

『별군관청 선생안』은 이름만을 기록하고 있어 각 사람들의 구체적인 역임 연도 및 그들의 신분, 본관, 가족 관계 등은 알 수 없다. 그러나 군관청에 소속된 사람들의 명단을 동래 지역 종족 자료들과 비교·대조함으로써 무임을 맡은 이들의 사회적 출자(出自) 및 사회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군관청의 운영 실태 및 지역 사회의 위계 관계를 파악하는 데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