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2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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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古代 |
영어의미역 | Ancient Period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고대/고대 |
집필자 | 백승충 |
[정의]
초기 국가 시대부터 남북국 시대까지 부산 지역의 역사와 문화.
[개설]
부산 지역에 독자적인 정치 체제를 갖춘 고대 국가가 등장한 것은 삼한 시대부터이다. 삼한의 기원은 청동기 시대 후기인 기원전 3세기부터인데, 마한(馬韓)·진한(辰韓)·변한(弁韓)이라는 3개의 정치 집단으로 정립하여 대외적으로 알려진 것은 철기 문화가 퍼져 나가기 시작한 기원을 전후해서이다.
[삼한 시대]
삼한 시대 때 부산은 변한에 속하였다. 『대동지지(大東地志)』에 따르면 부산 지역에는 거칠산국(居漆山國)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일명 장산국(萇山國)·내산국(萊山國)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삼국지(三國志)』 「위지 동이전(魏志東夷傳)」 ‘한 조(韓條)’에 나오는 변한의 12국 중 하나인 독로국(瀆盧國)과 동일한 정치체이다. 변한 12국은 고대 국가 성립 이전의 초기 국가 혹은 성읍 국가 형태의 정치체로서 일반적으로 ‘소국(小國)’이라고 부른다. 한편 독로국을 거제도에 비정하는 주장도 있지만, 부산 동래 지역에 비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부산 동래 패총과 노포동 유적·부산 복천동 고분군·연산동 고분군 등의 유적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삼국 시대]
고구려·백제·신라가 점차 고대 국가로 정립하여 발전할 때, 변한에서 출발한 가야는 삼국과의 경쟁에서 밀려 고대 국가로 진입하지 못하고 여러 나라로 분열된 상태에 있었다. 가야에 속했던 거칠산국이 신라의 영향권 아래 놓이게 된 것은 5세기 이후였다. 신라는 400년(내물왕 45)에 왜구의 침입을 기화로 고구려에 군사 원조를 요청하였다. 신라의 군사 원조를 요청받은 고구려 광개토 대왕(廣開土大王)은 군사 5만 명을 보내 신라와 함께 남정(南征)하여, 백제·왜(倭)와 연합하고 있던 낙동강 하류의 여러 가야 세력을 무력화시켰다.
고구려군의 남정은 기존 가야 세력의 재편과 신라의 급속한 성장을 가져왔다. 고구려 세력을 등에 업은 신라는 가야 진출의 통로이며 신라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부산 동래 지역의 거칠산국을 복속하여 거칠산군으로 편제하였다. 신라에 복속된 거칠산국은 대외 교섭의 거점으로 직접 지배 지역이자 물자 공급처로 격하되었다. 신라는 여세를 몰아 532년(법흥왕 19) 가락국[금관가야]를 병합한 데 이어 562년(진흥왕 23)에는 가라국[대가야]를 무력으로 병합함으로써 가야 제국은 완전히 소멸되었다.
[남북국 시대]
신라는 삼국 통일 이후 확보한 영토를 통제하기 위해 신문왕(神文王) 때 전국을 9주로 편성하고, 그 밑에 소경(小京)·군(郡)·현(縣)을 두는 등 지방 제도를 개편하여 중앙 집권 체제를 강화하였다. 경덕왕(景德王) 때 부산 지역의 거칠산군은 동래군으로 바뀌어 양주(良州)[지금의 양산]에 편제되었고, 그 속현이었던 대증현(大甑縣)과 갑화량곡현(甲火良谷縣)도 각각 동평현(東平縣)과 기장현(機張縣)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고대 관련 유적]
삼한 및 삼국 시대 부산의 중요 유적은 모두 강기슭이나 해안에 자리 잡고 있는데, 조도 조개더미를 제외하고는 온천천 수계에 집중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삼국 시대까지 이어진다. 부산의 대표적인 하천인 수영강 및 온천천 수계는 비교적 유로가 길고 지류도 많아 지리적으로 볼 때 공동 생활권의 중심지로 삼기에 알맞은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이들 유적에서는 이른 시기에 철기 생산과 활발한 대외 관계를 전개하였음을 알려 주는 유적과 유물이 다수 확인되었다.
삼한 및 삼국 시대 부산 지역을 대표하였던 정치체로 추정되는 독로국의 치소는 동래 지역이었다. 당시 동래 지역이 부산의 중심지였다는 것은 부산 동래 패총 및 노포동 유적·부산 복천동 고분군·연산동 고분군 등 많은 유적의 분포를 통해 추정할 수 있다. 국읍 및 복수의 일반 읍락과 촌으로 구성된 고대 동래 지역의 정치체의 경역은 후대 동래군과 영속 관계로 나오는 당감동과 기장군을 모두 포괄하고 있었다.
삼국 시대 가야의 대표적인 고분군이자 부산 동래 지역 최대의 유적인 부산 복천동 고분군에서는 금동관(金銅冠)과 철제 갑주(甲胄)[갑옷과 투구] 등 9,000여 점이 넘는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부산 복천동 고분군의 출토 유물을 통해서는 이 지역 가야 세력의 성장과 쇠퇴에 대한 여러 가지 역사적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풍부한 철기와 외래계 유물은 부산 지역 정치 세력의 능동적이고 활발한 대외 교역 활동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또한 신라계 유물은 신라의 이 지역 진출과 영향력을 확산한 시기를 알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