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24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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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萊山國 |
영어음역 | Naesanguk |
영어의미역 | Present Dongnae-gu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지명/고지명 |
지역 | 부산광역시 동래구 |
시대 | 고대/초기 국가 시대/삼한 |
집필자 | 백승충 |
[정의]
부산광역시 동래구에 있던 삼한 시대의 소국.
[개설]
내산국(萊山國)은 『삼국유사(三國遺事)』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동래현은 옛날의 장산국(萇山國) 일명 내산국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동래군은 원래 거칠산국이었는데, 신라에 편입된 뒤 거칠산군이 되었다가 경덕왕 때 동래군으로 개명되었다. 한편,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내산국의 옛터가 동래 도호부의 동쪽 10리에 있다고 하였다. 이상의 기록을 참고할 때 내산국[또는 장산국·거칠산국]은 부산 지역에 존재하였던 소국 정치체이었음이 분명하다. 『삼국지(三國志)』에 전하는 독로국(瀆盧國)의 경우 이설이 있지만, 내산국·장산국·거칠산국·독로국 등은 동일 정치체에 대한 별칭 혹은 이칭으로서 모두 부산 동래 지역에 존재하였던 소국을 지칭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명칭 유래]
『삼국유사』에 신문왕 때 온천으로 유명한 “장산국[혹은 내산국]이 있었다”라고 하며, 동래현의 별칭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동래현은 옛날의 장산국 또는 내산국이라고 하는데, 신라가 차지하여 거칠산군을 두었다고 하며, 고을 이름으로는 장산국·내산국·거칠산군·봉래현(蓬萊縣)·봉산(蓬山) 등을 전하고 있다.
부산 동래 지역의 옛 명칭인 이들 국명 또는 지명은 모두 우리말과 동일한 소리나 뜻을 가진 한자어를 빌려 표기한 것인데, 최초로 보이는 ‘거칠산[=황령산]’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으며, 후대 미칭으로 달리 불렸다. 장산국의 ‘장(萇)’과 내산국의 ‘내(萊)’는 모두 ‘거칠[다]’의 옛 형태인 ‘가시리’와 같은 뜻을 가진 한자어를 빌려 쓴 것인데, ‘내’는 교외를 뜻하고 ‘장’은 양도(羊逃)로서 복숭아와 비슷하나 맛이 쓴 과일을 뜻하여 전체적으로 ‘거칠다’는 뜻과 상통하기 때문에 동일 정치체에 대한 이칭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동래’와 ‘봉래’는 미칭인데, 두 지역 모두 중국 산둥 반도 북부의 동일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동래의 이칭인 ‘봉래현’은 이전 다른 사서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데, 신선 사상의 유행과 관련하여 후대에 추기(追記)된 것이다. 지금도 부산 지역에는 칠산동·선동·신선동·신선대 등 신선 사상과 관련된 지명이 많이 남아 있다. 다만 ‘내’가 ‘거칠다’는 뜻을 가졌고, ‘봉(蓬)’도 ‘흐트러져서 산란한 모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봉래’ 역시 ‘거칠[산]’을 모티브로 동일한 뜻을 가진 한자어를 빌려 쓴 복합적인 지명일 가능성이 높다.
삼한 시대 부산 지역 소국 이름인 독로국은 이후 삼국 시대를 거치면서 거칠산국[군]→ 장산국·내산국→ 동래군의 순서로 변화를 거듭하였다. 동래군은 신라 경덕왕 때 거칠산군을 개명한 것인데, ‘독로국’과 ‘거칠산군’에서 일부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붙여진 미칭이다. 만약 치소(治所)의 이동과 관련이 있다면, 동래는 ‘새로운 거칠산군[=내산군]’ 또는 ‘동쪽의 거칠산군’이라는 뜻으로 이전의 ‘독로’와도 음통하기 때문에 생겨난 지명일 수 있다. 이후 봉래현과 봉산이 추가되었을 것이다.
[형성 및 변천]
『삼국유사』와 『신증동국여지승람』 동래현조에 등장하는 내산국[=장산국]은 본래 삼한 시대의 거칠산국이었다. 그러나 탈해 이사금 때 신라에 멸망한 후 거칠산군이 되었다. 남북국 시대에 거칠산군은 양주(良州)[현 경상남도 양산시]에 편제되었고, 이후 경덕왕 때는 동래군으로 개명되었으며 속현이던 대증현과 갑화량곡현도 동평현과 기장현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고려 시대에는 울주(蔚州) 소속의 동래현으로, 속현이던 동평현과 기장현은 양주 동평현과 기장현으로 각각 편제되었다. 이후 동래 지역은 시대의 부침과 함께 변화를 거듭하다가 1995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최종적으로 모두 부산광역시에 편입되었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삼국사기』 거도(居道) 열전(列傳)에 의하면 탈해 이사금 때 거도가 우시산국과 거칠산국을 쳐서 멸하였다고 한다. 우시산국과 거칠산국은 각각 지금의 울산과 동래 지역으로 비정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두 지명 모두 고유의 소리 또는 뜻을 취해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거칠산국·장산국·내산국을 동래 지역으로 비정하는 데는 이견이 없다.
『대동지지』에서는 “동래현은 본래 거칠산국이다[일명 장산국이라고도 하였는데 옛터가 부의 동쪽 10리에 있다]”라고 하여 장산국의 옛터가 동래 도호부의 동쪽 10리에 있다고 한다. 이 기록에 따르면 장산국은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장산 주변의 재송동 부근으로 비정되며, 황령산 아래 배산에 치소가 있던 거칠산국과는 별개의 소국 정치체가 된다.
그런데 문제는 장산 부근에는 삼한 시대 ‘소국’의 존재를 상정할 만한 고분군 등 유적이 존재하지 않고, 삼국 시대 이 지역을 대표하는 부산 복천동 고분군과 연산동 고분군도 동일 시기가 아니라 순차적으로 조영되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내산국을 거칠산국과 별개 소국으로 보는 데는 주저되는 바가 있으며, 현재로서는 내산국 즉 장산국은 거칠산국의 별칭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관련 기록]
『삼국유사』 권3 탑상편(塔像篇) 영취사조(靈鷲寺條)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전한다. “절의 오래된 기록에는 이런 기사가 있다. 신라 신문왕 3년인 영순 2년 계미[683, 본문에 원년이라 한 것은 잘못이다]에 재상 충원공이 장산국[곧 동래현이니, 또 내산국이라고도 한다]의 온천에 목욕하고 성으로 돌아올 때 굴정역(屈井驛) 동지들[桐旨野]에 이르러 쉬었다[寺中古記云 新羅眞骨第三十一主神文王代 永淳二年癸未(本文云元年 誤) 宰相忠元公 萇山國(卽東萊縣 亦名萊山國) 溫井沐浴 還城次 到屈井驛桐旨野駐歇].”
『삼국사기』 지리지에 부산의 동래가 동래군으로 처음 나오는데, 군명의 변화 및 영현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동래군은 본래 거칠산군을 경덕왕이 개명하였는데 지금[고려]도 그대로 따른다. 그 영현은 둘로 동평현은 본래 대증현을 경덕왕이 개명하였는데 지금도 그대로 따른다. 기장현은 본래 갑화량곡현인데 경덕왕이 개명하여 지금도 그대로 따른다[東萊郡 本居柒山郡 景德王改名 今因之 領縣二 東平縣 本大甑縣 景德王改名 今因之 機張縣 本甲火良谷縣 景德王改名 今因之].”(『三國史記』 卷34 雜誌3, 地理1 東萊郡條)
『삼국사기』 권44, 열전4 이사부(異斯夫)전에는 “이사부[혹은 태종이라고도 한다]는 성은 김씨이며, 내물왕의 4세손이다. 지도로왕[지증왕] 때 바닷가 지방의 관원이 되어 거도의 권모를 물려받아 말놀음으로써 가야[혹은 가라라고도 한다]국을 속여 이를 쳐서 빼앗았다[異斯夫(或云苔宗)姓金氏 奈勿王四世孫 智度路王時 爲沿邊官 襲居道權謀 以馬戱誤加耶(或云加羅)國 取之].”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3 경상도 동래현조(東萊縣條)에는 “[건치 연혁] 옛날의 장산국[혹은 내산국이라고도 하였음]인데, 신라가 점유하여 거칠산군을 두었는데, 경덕왕이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으며, 고려 현종이 울주에 예속시켰다. …… [속현] 동평현 현의 남쪽, 10리 떨어진 곳에 있다. 본래 신라의 대증현으로, 경덕왕이 지금의 이름으로 고치고 동래군의 속현으로 삼았다. 고려 현종이 양주에 예속시켰으나, 본조 태종 5년에 다시 동래군에 귀속되었고, 뒤에 다시 양주에 예속되었다가 세종 때 다시 동래군에 귀속되었다. …… [군명] 장산국·내산국·거칠산군·봉래현·봉산[(建置沿革)古萇山國或云萊山國 新羅取之 置本居柒山郡 景德王改今名 高麗顯宗屬蔚州 …… (屬縣) 東平縣在縣南十里 本新羅大甑縣 景德王改今名 爲東萊郡領縣 高麗顯宗屬梁州 本朝太宗五年復來屬後復屬梁州 世宗朝復來屬 …… (郡名)萇山國 萊山國 居漆山郡 蓬萊縣 蓬山].”
『대동지지』 경상도 동래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연혁] 본래는 거칠산국이다[일명 장산국이라고도 하였는데, 옛터가 부의 동쪽 10리에 있다]. …… 명종 2년[1546]에 도호부로 승격시켰으며[본 현이 일본에 왕래하는 첫 길이었다][(沿革) 本居漆山國一云萇山國古址在府東十里 …… 明宗二年陞都護府以本縣爲倭人往來初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