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2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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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約後管理官與東萊府使約條草 |
영어음역 | Sinyakhu Gwalli Gawnyeo Dongnae Busa Yakjocho |
영어의미역 | First Draft of Dongnae Governor’s Agreement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하지영 |
[정의]
개항기 초량 왜관의 폐지와 부산 일본 조계지 설치 문제에 관한 문서를 모아서 엮은 책.
[개설]
1876년(고종 13) 조일 수호 조규 체결 이후 조선 대표 조인희(趙寅熙)와 일본 대표 미야모토 고이치[宮本小一] 사이에 조일 수호 조규 부록과 조일 무역 장정 규칙이 체결되었는데, 조일 수호 조규 부록 제3관과 제4관에 의거하여 1877년 1월 30일 동래부사 홍우창(洪祐昌)과 일본 관리관 곤도 마사키[近藤眞助] 사이에 부산구 조계 조약이 체결되었다. 이에 의해 종래 초량 왜관 부지는 일본 조계지로 설정되었는데, 『신약후 관리 관여 동래부사 약조 초(新約後管理官與東萊府使約條草)』는 1876년 홍우창과 곤도 마사키의 협의 내용이 기록된 문서로, 현재 부산광역시립시민도서관에 원본이 소장되어 있다.
[저자]
『신약후 관리 관여 동래부사 약조 초』는 1876년 부산일본관리청에서 간행한 것이다. 1871년 일본에서의 폐번치현(廢蕃置縣)으로 초량 왜관은 일본 공관으로 개칭되었다가 1876년 조일 수호 조규의 체결과 함께 부산일본관리청으로 바뀌었으며, 1880년 부산 영사관으로 개칭되었다.
[편찬/간행 경위]
1876년 11월 일본 외무성으로부터 무역 사무와 부산으로 도항하는 일본인 선박과 재화 보호, 거류지 차입 문제 등에 관한 업무를 위임받은 곤도 마사키는 동래부사 홍우창, 훈도 현석운(玄昔運) 등과 일본인 거류지 설정 문제를 둘러싼 회담을 개시하였다. 그 과정에서 『신약후 관리 관여 동래부사 약조 초』가 간행되었는데, 이는 부산일본관리청에서 기록으로 남겨둔 것이다.
[형태/서지]
『신약후 관리 관여 동래부사 약조 초』는 1책 30장의 백심판(白版心) 문서로, 내변(內邊)은 20.4×14.5㎝이고 책 크기는 27.0×19.3㎝인 일본어 필사본이다.
[구성/내용]
30장의 문서에는 회담 개시 초기 곤도 관리관이 제출한 일본인 거류지 설정에 관한 7개안을 비롯하여, 풍파로 인한 표류민과 파손 선박에 대한 관리관과 동래부사 사이의 협정문, 부산항 일본 상인들의 광고문, 일본 외무경이 예조 판서 서보당(徐輔堂)에게 보낸 설권 상판(挈券商販) 문서, 양국 상민 사이의 기망 현매(欺罔衒賣)와 대차 불채(貸借不債) 등에 관한 처리 협정문, 차품증(借品證), 차품 저당증(借品抵當證), 입납증(入納證), 수납증(受納證) 등 상품 거래 증서 양식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신약후 관리 관여 동래부사 약조 초』는 개항기 부산 초량 왜관의 철폐와 일본 거류지의 설치 과정 및 당시 양국 상인 사이의 상품 거래, 양국인 사이에서 일어난 분쟁 사건의 처리 과정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