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홍우창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4099
한자 洪祐昌
영어음역 Hong UChang
이칭/별칭 유성(幼盛),소운(小芸),정헌(貞憲)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로112번길 61[수안동 421-56]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현명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본관 풍산
대표관직 동래 부사|경기도 관찰사
출생 시기/일시 1819년연표보기 - 출생
활동 시기/일시 1866년 - 문과 병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875년 8월연표보기 - 동래 부사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877년연표보기 - 동래 부사 퇴임
활동 시기/일시 1879년 - 강수관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880년 - 예조 판서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881년 - 진위 겸 진향사로 중국에 다녀옴
활동 시기/일시 1882년 - 경기도 관찰사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883년 - 수원부 유수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888년 - 판의금부사, 예조 판서, 의정부 좌참찬 역임
활동 시기/일시 1889년 - 판의금부사에 임명
출생지 한양 - 서울특별시
부임|활동지 동래부 동헌 - 부산광역시 동래구 수안동 421-56지도보기

[정의]

개항기 동래 부사를 지낸 문신.

[가계]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유성(幼盛), 호는 소운(小芸). 증조 할아버지는 홍낙명(洪樂命)이고, 할아버지는 홍직모(洪稷謨)이며, 아버지는 도정(都正) 홍한주(洪翰周)이다.

[활동 사항]

홍우창(洪祐昌)[1819~1888]은 1866년(고종 3)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홍문관 부수찬, 사간원 헌납을 지내고 1875년(고종 12) 8월 황정연(黃正淵)의 뒤를 이어 동래 부사가 되었다. 1876년 맺은 강화도 조약에 따라, 1877년 부산 주재 일본 관리관 곤도 마스키[近藤眞鋤][1840~1892]와 ‘부산항 일인 거류지 조계 조약(釜山港日人居留地租界條約)’을 체결하고, 뒤이어 ‘조일 표류선 취급 협정(朝日漂流船取扱協定)’을 맺어 초량 왜관을 근대적 개항장으로 바꾸는 일에 앞장섰다. 재임 중 수신사 김기수(金綺秀)의 방일, 쓰시마[對馬]의 도서(圖書)[조선에서 쓰시마 도주 등에게 내 준 도장으로 이것이 찍혀 있어야 입국, 무역, 외교 문서 등이 가능함] 및 공문서 환납, 부산항 일인 거류지 조계 조약 체결 후 일본 선박의 왕래 현황을 조정에 보고하는 등 많은 일을 하였다.

1879년(고종 16) 강수관(講修官)으로 일본 대리공사 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1842~1917]의 접반관(接伴官)이 되어 원산, 인천 등지의 개항을 서두르는 일본의 진출을 저지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 후 형조 판서, 예조 판서를 지냈다. 1881년 진위 겸 진향사(陳慰兼進香使)로 중국에 다녀와 이듬해 6월 경기도 관찰사가 되었고, 임오군란 당시 청나라의 제독 우창칭[吳長慶][1833~1884]을 영접하였다. 1883년 수원부 유수, 1888년 판의금부사, 예조 판서, 의정부 좌참찬 등을 역임하고 1890년 다시 판의금부사가 되었다.

[학문과 저술]

글씨를 잘 썼으며 특히 전서(篆書)에 능하였다. 운요호 사건[1875]과 강화도 조약[1876] 등 조선의 항구를 개방한 시기에 동래 부사로 활동하였기 때문에 홍우창의 보고문은 한일 관계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홍우창의 보고문은 『왜사일기(倭使日記)』 1~5책으로 남아 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정헌(貞憲)이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