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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0927
한자 安長遠
영어음역 An Jangwon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 1042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장선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출생 시기/일시 1924년 1월 9일연표보기 -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36년 - 동래중학교 입학
활동 시기/일시 1940년 11월 23일 - 부산 항일 학생 의거[노다이 사건]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41년 - 징역 8월형을 선고 받음
활동 시기/일시 1942년 3월 - 출옥
몰년 시기/일시 1971년 2월 19일연표보기 -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3년연표보기 - 건국 훈장 애족장 추서
관련사건 시기/일시 1940년 11월 23일연표보기 - 부산 항일 학생 의거
출생지 경상남도 울산군 온양면 덕신리 516
거주|이주지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 1042
학교|수학지 동래중학교 - 부산광역시 동래구 칠산동 360지도보기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안장원(安長遠)[1924~1971]은 1924년 1월 9일에 당시 경상남도 울산군 온양면 덕신리 516번지[현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산읍 덕신리]에서 태어났다. 1936년 동래중학교[현 동래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동래중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이던 1940년 11월 21일과 22일 경상남도 연합 군사 대연습이 시행되었고, 11월 23일 부산 공설 운동장[현 구덕 운동장]에서 제2회 경상남도 학도 전력 증강 국방 경기 대회가 열렸다. 이날 일본인 심판들은 일본인 학교인 부산중학교를 우승시키기 위해 입장 절차부터 경기 내용에 이르기까지 편파적으로 진행하였다. 대회의 심판장인 노다이[乃台] 대좌가 이런 부당한 경기 진행을 총지휘하여, 결국 동래중학교에 돌아가야 할 우승을 부산중학교가 차지하게 되었다.

부산제2상업학교와 동래중학교 학생들은 이에 항의하여 폐회식 참여를 거부하였으나, 학교 당국의 강력한 권유로 참여하게 되었다. 그러나 학생들이 폐회식에서 대회의 부당성을 항의하고 「아리랑」 등 민요를 부르며 조선 독립 만세를 외치기에 이르자, 폐회식장은 일본인에 대한 총공격장이 되었다. 나아가 안장원은 1,000여 명의 학생들과 함께 운동장 입구에서 다시 집결하였고 시가행진을 하여 영주동에 있는 노다이의 관사를 공격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일본 헌병들은 귀가하는 학생들 200여 명을 체포하였고, 주동자로 지목된 11명은 구속 기소되었다. 이 때 안장원도 구속 기소되어 1941년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 8월을 선고 받았다. 1941년 8월 25일 대구복심법원에 항소하였으나 마찬가지로 징역 8월형을 선고 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으며 1942년 3월 중순에 출감하였다. 1971년 2월 19일에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3년에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7.10.13 주소 오류 수정 울산시 울주군 온양읍 덕신리[현 경상남도 울산군 온양면 덕신리 516번지] -> 경상남도 울산군 온양면 덕신리 516번지[현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산읍 덕신리
2017.10.13 주소 오류 수정 온양면 -> 온산면, 온양읍 -> 온산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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