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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정교린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0232
한자 增正交隣志
영어음역 Jeongjeonggyorinji
영어의미역 Diplomacy of Joseon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하우봉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도서
편자 김건서
간행자 이사공|임서무
권책 6권 3책
행자 10행 20자
규격 32.1×20㎝
어미 상백어미(上白魚尾)
권수제 임술(1802) …… 김건서
판심제 상백어미(上白魚尾)
편찬 시기/일시 1802년 5월연표보기 - 편찬
간행 시기/일시 1802년 5월연표보기 - 초간본 간행
간행 시기/일시 1865년 11월연표보기 - 중간본 간행
간행 시기/일시 1940년연표보기 - 영인본 간행
간행 시기/일시 1974년연표보기 - 영인본 간행
소장처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599
소장처 국립중앙도서관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로 664
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하오개로 323

[정의]

조선 후기 부산 왜관에서 행해지는 대일 관계를 기록한 외교 자료집.

[편찬/간행 경위]

1796년(정조 20)경 사역원 당상 역관 김건서(金建瑞)『증정교린지(增正交隣志)』의 편찬을 시작해 6년 후인 1802년(순조 2)에 완성하였다. 『증정교린지』를 편찬한 동기에 관해 서문(序文)에서 세 가지를 밝히고 있다. 첫째, 사례가 변하고 증가하였기 때문에 증보판을 간행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둘째, 『통문관지(通文館志)』의 내용이 사대 관계에만 치중하고 교린 관계에 대해서는 소략하며 부정확한 부분이 있어서 보완할 필요가 있다.

셋째, 새롭게 체결된 약조와 규식(規式)의 사례를 보완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함으로써 참고하기에 편하고 대일 관계의 실무를 처리함에 있어서 현혹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편찬 방식은, 『통문관지』 교린조 내용을 기본 자료로 하고 그 이후 변하고 보태어진 새로운 규례와 약조, 법령들을 추가로 보완하였다.

[형태/서지]

『증정교린지』의 간행은 두 차례에 걸쳐서 이루어졌다. 『증정교린지』 초간본(初刊本)은 1802년 5월 편찬이 완성된 직후 바로 간행되었다. 활자본 6권 2책으로 이루어졌으며, 현재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증정교린지』 중간본(重刊本)은 1865년(고종 2) 11월에 간행되었는데, 내용은 1802년의 초간본에다 그 후 1865년까지의 새로 체결된 약조와 사례를 추가로 증보한 것이다.

중간본의 판본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본[도서 번호: 규 5273]과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도서 번호: 한-31-231],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본[도서 번호: 2-3512]의 세 가지가 있다. 세 가지 모두 6권 3책이다. 그런데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본은 5권과 6권이 후에 필사하여 보충된 것으로, 현재의 상태는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이 가장 양호하다.

이후 1940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에서 초간본인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본을 저본으로 영인본을 간행하였다. 그런데 여기에 1865년에 증보된 내용만 별도로 편집해 ‘증정교린지 증보(增正交隣志增補)’라고 하면서 초간본의 뒷부분에 활판 인쇄로 하여 첨부하였다. 이것은 현재 가람문고로 서울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도서 번호: 가람 327. 51G 418J]. 해방 후인 1974년에는 아세아문화사에서 경성제국대학 소장본을 저본으로 영인본을 간행하였다.

[구성/내용]

『증정교린지』『통문관지』로부터 대일 관계 부분을 독립시켜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초간본은 6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별로 항목과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1권은 접대 일본인 구정 사례(接待日本人舊定事例), 연례 송사(年例送使), 겸대(兼帶), 공무역(公貿易) 등 8항목인데, 내용은 대일 관계의 규정 및 일본의 대 조선 정례 외교 사절에 대한 조선 측의 접대에 관한 것이다. 일본인 사절에 대한 임진왜란 전의 접대 규정과 임진왜란 후의 개정된 규정, 대마도의 연례 송사, 겸대 제도, 잡물을 쌀값으로 환산하는 방법, 공무역과 공작미(公作米)에 관한 규정이 기술되어 있다.

제2권은 차왜(差倭) 1항목으로, 조선 후기 일본에서 조선으로 파견한 차왜의 연혁과 종류에 관한 내용이다. 제3권은 관우(館宇), 다례의(茶禮儀), 진상 물건 간품식(進上物件看品式), 왜사 숙배식(倭使肅拜式), 연향의(宴享儀) 등 17항목으로, 내용은 왜관의 설치 연혁과 인원 구성, 조선 측의 상대역인 동래부의 각종 관원, 숙배와 연향 등의 의식, 무역에 관한 절차와 규정 등이다.

제4권은 조약(條約), 금조(禁條), 개시(開市), 휼전(恤典), 울릉도 의죽도 변정 전말(鬱陵島礒竹島辨正顚末) 등 10항목으로, 내용은 1443년(세종 25) 계해약조(癸亥約條) 이후 1739년(영조 15) 사이에 체결된 각종 약조와 금조, 왜관 무역에 관한 규정, 도량형, 조선 측의 경비 부담 내역 규정에 관한 것이다. 말미에 울릉도 의죽도 변정 전말을 넣어 안용복의 영토 수호 사건을 비롯하여 울릉도와 독도의 영토 분쟁에 관해 정리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제5권은 통신 사행(通信使行), 도서식(圖書式), 서계식(書契式), 피지 연향(彼地宴享), 전명의(傳命儀), 일광산 치제(日光山致祭), 회답 국서(回答國書), 신행각 연례(信行各年例) 등 24항목으로, 조선에서 일본에 파견한 국왕 사절단인 통신 사행의 연혁에서부터 왕복 일정, 의식, 국서와 서계의 양식, 예단 등 모든 측면을 망라하고 있다. 제6권은 문위행(問慰行), 수회 답서 계별 폭식(受回答書契別幅式), 문위 각 연례(問慰各年例) 등 10항목으로, 대마도에 파견한 실무 외교 사절단인 문위행에 대한 제반 사항을 상세히 수록하였다.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사항은 부산에 있었던 초량 왜관에서 행해지던 조선 후기 대일 관계의 제반 요소를 망라하고 있다. 『증정교린지』의 형식은 ‘지(志)’로서 편년체적인 기록이 아니고, 항목을 설정한 다음 관계 기사를 서술하는 기사 본말체의 체재를 취하고 있다. 수록된 내용의 연대를 보면 초간본의 경우 1443~1796년의 약 350년간의 약조와 사례 등이 실려 있다. 중간본의 경우 여기에 1802~1864년의 사례가 증보되었다. 합치면 420여 년간의 대일 관계에 관한 내용을 정리한 셈이다.

[의의와 평가]

『증정교린지』의 내용상의 특징과 의의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내용의 풍부성이다. 『증정교린지』에 수록된 항목은 모두 68개로서 조선 초기의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 「조빙 응접기(朝聘應接記)」의 29개 항목이나 『통문관지』 교린조의 38개 항목에 비해 훨씬 많아졌다.

그 이유는 조선 전기와 17세기에 비해 대일 관계의 규정이 그만큼 늘어났고, 왜관과 통신 사행, 문위행, 연례 송사, 차왜 및 후기의 새로운 약조 등 새로운 부분이 많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객관적인 요인 외에 『증정교린지』를 조일 관계에 관한 궤범 내지 집대성적인 저작으로 만들려고 한 편찬자의 의도와 노력의 결과임은 물론이다.

둘째, 17세기에서부터 18, 19세기까지의 변화상을 잘 보여준다는 점이다. 『증정교린지』『통문관지』의 교린조에 비해 대폭 확대되었지만 임진왜란 이후 숙종대 초까지의 시기는 중복되는 부분이 많다. 한편 18세기 이후 19세기 중반까지의 대일 관계사는 『증정교린지』에만 나와 있으며, 새로 첨가된 항목도 있다. 이러한 점을 비교해 보면 17세기와 18세기 이후의 변화 양상을 알 수 있다.

셋째, 『증정교린지』『통문관지』보다 경제적 측면을 중시하였다. 『증정교린지』에 새로 추가된 겸대, 공무역, 공작미, 중절오선(中絶五船), 문위행 등의 항목은 17세기 전반기부터 있었던 사항이지만 『통문관지』에는 빠져 있다. 이것들은 모두 경제적 요소로서 대일 외교의 실무 담당자들인 역관들이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사항이다.

또 같은 항목의 내용 서술에 있어서도 『증정교린지』 쪽이 훨씬 자세하다. 특히 일본 측 사절단에 대해 그 구성 인원뿐만 아니라 물자 지급의 규정과 수량, 연회 등 접대에 소용되는 물자와 비용, 진상 물품과 회사품(回賜品)의 종류와 수량, 조선 사절단의 별폭(別幅)과 사예단(私禮單) 등에 대해 아주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증정교린지』는 대일 관계의 경제적 측면 연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넷째, 『통문관지』가 중국 연호(年號)를 기본으로 사용하고 있는 대신 『증정교린지』는 조선 국왕의 왕호(王號)를 기본으로 하는 연대 표기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울릉도에 대한 전말이라는 항목을 따로 설정하여 영토 문제에 대해 예민하게 대응하고 있는 것도 주목된다. 이것은 18세기 후반 당시 고양되었던 민족의식의 발로라고 볼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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