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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사록』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0200
한자 乘槎錄
영어음역 Seungsarok
영어의미역 Drifting Records in Southern China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윤상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도서
저자 원중거
권책 3권 4책
행자 12행 22자
규격 24.4×16.5㎝
저술 시기/일시 1763~1764년연표보기 - 저술
관련 사항 시기/일시 1763년 7월 24일 - 영조 배알
관련 사항 시기/일시 1763년 10월 6일 - 부산 출발
관련 사항 시기/일시 1764년 2월 16일 - 에도 도착
관련 사항 시기/일시 1764년 6월 22일 - 부산 도착
관련 사항 시기/일시 1764년 7월 8일 - 영조에게 복명
소장처 고려대학교 도서관[육당 문고] -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동 5가 1-29

[정의]

1763년 부산에서 출발한 계미 사행의 부사 서기 원중거가 저술한 사행록.

[저자]

원중거(元重擧)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원주(原州)이며, 자는 자재(子才), 호는 현천(玄川)·물천(勿川)·손암(遜菴)이다.

1719년(숙종 45)에 태어났으며, 1750년(영조 26) 경오식년 사마시(司馬試)에 생원 2등으로 합격하였다. 그러나 서얼 출신으로서 10여 년간 실직(實職)을 제수 받지 못하다가 40세가 넘어서야 장흥고 봉사(長興庫奉事)라는 종8품에 임명되었다. 1763년(영조 39)에 계미(癸未) 통신사의 부사 서기(副使書記)로 사행을 다녀왔다. 1771년(영조 47)에 종6품의 송라 찰방(松羅察訪)으로 승직되었다. 그러나 두 달 만에 관직이 교체되어 그 뒤 가난에 쪼들리게 되었으며, 결국 선영(先塋)이 있는 지평(砥平)[지금의 경기도 양평 지역] 산중의 물천협(勿川峽)에서 은거 생활을 하였다. 1776년(영조 52)에는 장원서 주부(掌苑暑主簿)를 맡게 되었다. 1789년(정조 13)에 장원서 주부로 있으면서 이덕무(李德懋)·박제가(朴齊家) 등과 함께 『해동읍지(海東邑誌)』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1790년(정조 14)에 목천 현감(木川縣監)에 제수되었으나 그 해에 죽었다. 저서로는 『승사록(乘槎錄)』 외에 『화국지(和國志)』가 있다.

[편찬/간행 경위]

계미 사행은 조엄(趙曮)을 정사(正使)로 하여 1763년 8월부터 이듬해 7월에 걸쳐 이루어진 11차 사행이다. 이때 시인으로서도 뛰어난 역량을 보였던 원중거는 부사 서기(副使書記)로 참여하여, 쓰시마[對馬島]에서 에도[江戶]에 이르는 여정에서 만난 일본인과의 대화 내용, 일본의 정치·종교·지리·가옥·농업·상업 등을 일기 형식으로 상세히 기록하였다. 계미 사행은 특히 많은 사행록을 남겼는데, 원중거『승사록』 외에도 조엄의 『해사일기(海槎日記)』를 비롯하여 8종의 사행록이 더 있어 총 9종의 사행록을 남겼다.

[형태/서지]

3권 4책으로 된 필사본이다. 12행 22자에 책의 크기는 24.4×16.5㎝이다. 고려대학교 도서관 육당 문고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3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1권은 한양에서 내려와 부산에서 출발하여 쓰시마를 경유해 일본 본토로 들어가는 관문인 아카마세키[赤間關]까지의 여정을 담고 있다. 2권은 아카마세키를 출발해 오사카[大坂]·사이쿄[西京]·나고야[名護屋] 등 일본 본토의 주요 도시를 거쳐 에도에 도착하여 전명식(傳命式)을 마치기까지의 일정을 담고 있다. 3권은 회정록(回程錄)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 것처럼 전명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여정에 대해 기록하였다.

[의의와 평가]

조선 후기 한일 문화 교류를 살피는 데 중요한 사료로서, 당시 실학자들에게 일본 및 해로의 중요성을 환기해 주었다는 데에 의의가 있으며, 일본 관련 지식 및 정보의 생성과 유통에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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