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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0156
한자 宋光洵
영어음역 Song Gwangsun
이칭/별칭 학경(學卿)
분야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동 산13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변광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유생
성별
본관 여산
출생 시기/일시 1696년연표보기 - 출생
활동 시기/일시 1731년 - 동래읍성 축성기를 씀
몰년 시기/일시 1756년연표보기 - 사망
출생지 동래부 - 부산광역시
사당|배향지 세덕사 - 부산광역시 금정구 회동동 동대 마을

[정의]

조선 후기 동래읍성을 쌓을 때 축성기를 쓴 동래 출신의 유생.

[가계]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학경(學卿). 수양 대군(首陽大君)이 조카 단종(端宗)을 쫓아내고 왕위를 빼앗은 계유정난[1453]이 일어난 후 동래 지역으로 내려간 동주(東洲) 송극명(宋克明)의 10세손이다. 아버지는 송규회(宋奎會)이고, 형은 송광적(宋光迪)송광제(宋光濟)이다. 부인은 월성 김씨(月城金氏)다. 자녀는 3남 1녀를 두었다. 동래의 여산 송씨(礪山宋氏)는 원윤공파(元尹公派)의 후손으로, 입향조의 호를 따서 동주공파(東洲公派)로도 불린다. 입향한 지 500년이 넘은 부산의 대표적인 토성(土姓)이다.

[활동 사항]

송광순(宋光洵)[1696~1756]은 1731년(영조 7) 동래 부사 정언섭(鄭彦燮)이 주도하여 임진왜란 때 무너진 동래읍성을 다시 쌓을 때 축성기를 쓴 유생이다. 동래읍성 재건에 들어간 물자와 인원, 재건 내역을 소상히 기록하여 2권의 책으로 완성하였다. 송광순은 동래부 길목인 황산도(黃山道)의 찰방(察訪)으로 부임한 김광악에게 동래읍성 축조 기념비를 세울 것을 건의하였다. 이에 김광악송광순의 축성기를 참고하여 1735년(영조 11) 내주 축성비(萊州築城碑)[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동 산131-1 금강공원]의 비문을 지었다. 글씨는 송광순의 둘째 형인 송광제가 새겼다. 송광순 삼형제는 동래 지역에서 글씨를 잘 쓰기로 유명했다.

[묘소]

『여산 송씨 원윤공파보』에는 송광순의 묘가 동래부의 운봉산 절터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부산광역시 금정구 회동동 동대 마을에 있는 여산 송씨 동주공파의 문중 사당인 세덕사(世德祠)에서 배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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