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1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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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宋光濟 |
영어음역 | Song Gwangje |
이칭/별칭 | 덕경(德卿)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동 산13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변광석 |
[정의]
조선 후기 내주 축성비(萊州築城碑)의 비문을 쓴 동래 출신의 유생.
[가계]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덕경(德卿). 1453년 수양 대군(首陽大君)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조카 단종(端宗)의 왕위를 빼앗자 동래로 입향한 동주(東洲) 송극명(宋克明)의 10세손이다. 아버지는 송규회(宋奎會)이고, 형은 송광적(宋光迪)이며, 동생은 송광순(宋光洵)이다. 삼형제는 동래에서 글씨를 잘 쓰기로 유명했다. 첫째 부인은 재령 이씨(載寧李氏)이고, 둘째 부인 추계 추씨(秋溪秋氏)이다. 자녀는 4남을 두었다. 동래의 여산 송씨(礪山宋氏)는 원윤공파(元尹公派)의 후손으로, 입향조의 호를 따서 동주공파(東洲公派)로도 불린다. 입향한 지 500년이 넘은 부산의 대표적인 토성(土姓)으로, 부산 지역에 많은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다.
[활동 사항]
송광제(宋光濟)[1692~1743]는 동래 출신의 유생으로 글씨를 잘 쓰기로 근방에서 소문이 났다. 1735년(영조 11) 황산도 찰방 김광악이 동래읍성 축조를 기념하기 위해 내주 축성비[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동 산131-1 금강공원]를 세울 때 송광제가 방대한 양의 글씨를 썼다. 비문의 내용은 1731년 동래읍성 축조 시 동생 송광순이 쓴 축성기를 참고하여 김광악이 짓고, 제액(題額)[비의 명칭을 새긴 부분]은 유우기(兪宇基)가 썼다. 비석의 크기는 높이 270㎝, 너비 107㎝이다.
[묘소]
『여산 송씨 원윤공파보』에 의하면 송광제의 묘는 동래부의 동쪽 삼어(三魚) 마을[현 해운대구 반송동] 뒷산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부산광역시 금정구 회동동 동대 마을에 있는 여산 송씨 동주공파의 문중 사당인 세덕사(世德祠)에서 배향하고 있다.